영홍문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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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홍문관에 소속된 정1품 관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성준 (수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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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홍문관에 소속된 정1품 관직.

내용

정원은 1인이다. 1456년(세조 2) 6월 사육신사건 직후 집현전을 혁파하고 예문관이 그 사무를 대행하다가, 1464년 11월에 양성지(梁誠之)의 건의에 의하여 집현전 대신 홍문관을 설치하였지만 처음에는 이름만 존재하였다.

1478년(성종 9) 3월에 홍문관이 예문관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될 때 정1품의 영홍문관사 1원을 두어 의정(議政)이 겸하게 한 것 같다.

그것은 예문관이 국초에 예문춘추관으로 있을 때 감관사(監館事) 1원이 있어 시중 이상이 겸하였다 하고, 1401년(태종 1) 7월에 예문춘추관이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각각 분리될 때 실록에는 아무 언급이 없지만, 1466년 정월에 관제를 개혁할 때에 영관사를 영사로 고쳤다고 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성종 때 예문관에서 홍문관이 완전히 분리 독립할 때에도 홍문관에 영사가 설치되어『경국대전』에 그대로 수록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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