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사 성전

  • 역사
  • 제도
  • 남북국
삼국시대, 신라의 영흥사를 관리한 관서.
제도/관청
  • 설치 시기684년(신문왕 4)
  • 폐지 시기759년(경덕왕 1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노중국 (계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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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영흥사를 관리한 관서.

내용

영흥사는 신라 법흥왕의 비 보도부인(保刀夫人)이 건립한 사찰로서, 지금의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하였다. 이 절은 법흥왕비와 진흥왕비가 만년에 여승으로 머물렀던 만큼 왕실의 원당(願堂)의 성격을 지녔다.

성전은 684년(신문왕 4) 처음 설치하였는데, 759년(경덕왕 18) 관제개혁 때 감영흥사관(監永興寺館)으로 개칭되었다. 관원으로는 대나마 1인과 사(史) 3인을 두었는데, 대나마는 경덕왕 때 감(監)이라 개칭하였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황룡사구층탑지(皇龍寺九層塔誌)의 연구」(변선웅, 『국회도서관보』 10-10, 1973)

  • - 「신라통일기의 성전사원(成典寺院)의 구조와 기능」(채상식, 『부산사학』 8,1984)

  • - 「新羅の寺院成典と皇龍寺の歷史」(浜田耕策, 『學習院大學文學部硏究年報』 20,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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