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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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일제강점기 때, 민족혁명당 부녀부, 대한애국부인회,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임시정부 군무부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76년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910년(순종 3)
  • 출생지평안북도 선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윤상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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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민족혁명당 부녀부, 대한애국부인회,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임시정부 군무부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평안북도 선천 출신. 김학규(金學奎)의 부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1년 남만주에서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난징[南京]으로 이주하여 만주지역과의 연락을 담당하였다.

1935년에는 민족혁명당 부녀부에서 활약하였고, 1936년에는 난징의 대한애국부인회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창립될 때, 여군으로 김정숙(金貞淑)·지복영(池復榮)·조순옥(趙順玉)·신순호(申順浩)·민영주(閔泳珠)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42년 2월 임시정부 군무부 제6징모분처의 간부로서 주임위원 김학규·김광산(金光山)·서파(徐波)·박찬열(朴燦烈)·지복영·오희영(吳姬英) 등과 함께 안후이[安徽]·허베이[河北]·산둥[山東]지역에서 초모·선전·파괴 등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6월 제6징모분처가 통합, 광복군의 제3지대로 확충, 개편될 때 제3지대장 김학규 휘하에서 기밀실장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이후 계속 중국에 머물면서 1947년 선양[瀋陽]에서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위원장이 되는 등 활동하다가 1948년 4월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독립운동사』4·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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