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언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예문관대교, 박사, 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길포(吉浦)
  • 순풍정(順風亭)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능창대군 모역사건
  • 본관해주(海州)
  • 사망 연도1637년(인조 1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문관대교(弘文館待敎)|박사|전적(典籍)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금산 충렬사 정면 미디어 정보

금산 충렬사 정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예문관대교, 박사, 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길포(吉浦), 호는 순풍정(順風亭). 현감 오하몽(吳下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순천부사 오응정(吳應鼎)이며, 아버지는 도총부도사 오직(吳稷)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성품이 강직하여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면 어떠한 사람에게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일찍이 문명이 높아 고을의 천거로 사재감(司宰監)의 참봉을 거쳐, 예문관대교(弘文館待敎)를 지냈다. 1616년(광해군 8) 봉사로 재직시 능창대군모역사건(綾昌大君謀逆事件)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성균관의 박사·전적(典籍) 등 요직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최명길(崔鳴吉)의 강화론이 유력하여 강화가 이루어지자 이를 반대하여, 학사 윤집(尹集)에게 “나라의 원수도 갚지 못하였고 아버지의 원수조차 갚지 못하였는데 어찌 오랑캐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가 있겠는가”하고는 한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조는 불쌍하게 생각하여, 군졸을 시켜 시신을 찾아내어 고향땅에 안장하게 하였다. 부인 정씨(鄭氏)도 남편의 시신을 건져 장례를 치른 뒤 목숨을 끊었다. 나라에서는 정려의 은전을 내려 부부의 충렬을 포상하였다. 금산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고, 뒤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