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에 불타 없어진 창덕궁 대조전을 짓는다는 구실 아래, 1920년 일본인들에 의해 헐려 대조전의 부재로 사용되었다.
원래 교태전이 있었던 자리에는 석탑·부도(浮圖) 등 민족항일기에 전국에서 강제로 옮겨다놓은 석물(石物)들이 배열되어 있다.
경복궁 창건 당시인 1395년(태조 4)에는 없었는데, 1443년(세종 25)에 증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553년(명종 8)에 불탄 것을 이듬해에 중건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다시 불타버렸다.
이로부터 270여년이 지난 1865년(고종 2)에 중건되었으며, 1876년에 다시 불탄 것을 1888년에 재건하였고, 1920년에 창덕궁으로 옮겨질 때까지 건재하였다. 왕의 침전(寢殿)인 강녕전(康寧殿)에 대해 왕비의 침전으로 지었으므로, 궁궐 안에 있었던 150여 채의 건물 가운데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85년 보물로 지정된 경복궁 아미산 굴뚝은 뒤뜰에 있는 아미산(峨嵋山) 위에 아름다운 꽃무늬를 새긴 굴뚝으로, 왕비의 주택이 지녔던 높은 품격의 일면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1890년대에 그려진 「북궐도형(北闕圖形)」과 같은 때 편찬된 「궁궐지」 등을 토대로 중건된 교태전의 규모 및 배치형식을 알 수 있고, 더구나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는 1920년 당시의 사진과 평면도가 실려 있어서 원형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