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禑王) 초에 왜(倭)가 울주(蔚州: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청도(淸道)·밀양(密陽)·자인(慈仁: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언양(彦陽: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쪽지역) 등지에 침구하자 원수(元帥)로 우인열(禹仁烈)·배극렴(裵克廉)·하을지(河乙沚)와 더불어 울주에서 10인을 참(斬)하고 배 7척을 노획하였다.
또 1379년(우왕 5)에는 배극렴(裵克廉)·박수경(朴修敬) 등과 더불어 사주(泗州)에서 쳐 크게 깨뜨려 140여 인을 살획하자 왕이 전리판서(典理判書) 정남진(鄭南晋)을 보내 모든 장수에게 술을 내렸다. 1380년 3월 왜가 광주(光州) 및 능성(綾城: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부근)·화순(和順)을 침구하므로 최공철(崔公哲)·김용휘(金用輝) 등과 더불어 왜를 전라도에서 방어하였다.
이어 8월 왜적이 사근내역(沙斤乃驛: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 부근)에 진을 쳤는데, 양광도조전원수(楊廣道助戰元帥)가 되어 원수 배극렴·김명휘(金明輝) 등과 더불어 공격하였으나 패퇴하여 박수경(朴修敬)과 배언(裵彦)이 죽고 사졸 가운데 죽은 자가 500여 인에 달하였다. 이듬해 5월 왜적이 이산수(伊山戍)를 침범하니,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로 싸워 9인을 죽였다. 1382년 2월에는 임주도순문사(林州都巡問使)로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