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우서(于敍). 오원(吳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언표(吳彦彪)이고, 아버지는 예문관검열 오희도(吳希道)이다. 어머니는 의금부도사 김복흥(金復興)의 딸이다. 오희유(吳希有)에게 입양되었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52년(효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주서(注書)를 역임하였다. 어머니상을 당하여 귀향하였다가 3년상을 마친 뒤 춘추관기주(春秋館記注)에 서임되었다.
또, 전적(典籍)을 거쳐 예조좌랑에 승임되었으며, 그 뒤 병조 겸 지제교(兵曹兼知製敎)·함평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함평현감으로 있을 때 형장을 받은 자의 무고로 초산에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돌아온 뒤, 벼슬할 뜻을 버리고 깊은 산속에 서실(書室)을 세우고 ‘석문거사(石門居士)’라고 자칭하였다. 성품이 단정하고 깨끗하였고, 학문연구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으며, 특히 성리서(性理書)를 연구하여 정신수양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