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윤두서 자화상
윤두서 자화상
회화
개념
그리는 화사와 그려지는 대상 인물이 동일인인 경우의 초상화.
내용 요약

자화상은 그리는 화사와 그려지는 대상 인물이 동일인인 경우의 초상화이다. 서양에서는 렘브란트, 고흐 등 걸출한 화가들의 자화상이 유명하다. 화가 자신이 인식하는 자아라는 차원에서 흥미 있는 장르이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록상으로 보면 이미 고려 시대에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매월당집』에서 김시습의 자화상이 확인된다. 18세기 우리나라 자화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윤두서 자화상」이다. 그 밖에 이광좌, 강세황의 자화상도 심미적 안목이 뛰어나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타 초상화의 융성에 비하면 희소한 수량이다.

목차
정의
그리는 화사와 그려지는 대상 인물이 동일인인 경우의 초상화.
연원 및 변천

서양에서 뒤러(Durer, A.), 렘브란트(Rembrandt, H.van R.), 고흐(Gogh, V.van.) 등 걸출한 화가들의 자화상을 종종 볼 수 있다. 자화상은 화가 자신이 인식하는 자아라는 차원에서 개성이나 천재성의 입증과 함께 서양 예술의 흐름에서 흥미 있는 장르로 지속적으로 그려졌다. 중국에서는 이미 한대(漢代)에 조기(趙岐)라는 사대부 화가가 자화상을 그렸음이 『후한서(後漢書)』에 수록되어 있다. 그 뒤에도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 의하면, 진대(晋代)의 왕휘지(王徽之)가 임경자사진(臨鏡自寫眞)하였다고 하며, 미불(米芾)의 『화사(畵史)』에 당대(唐代)의 왕유(王維)도 자화상을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오대(五代)의 관휴(貫休)가 그린 16나한도 중 나고나존자(羅고羅尊者) 1폭이 관휴의 자화상이라 함은 명대의 진계유(陳繼儒)가 지은 『이고록(妮古錄)』에 수록되어 있다. 송대의 예로는 소식(蘇軾)의 자화상에 대한 내용이 『청하서화방(淸河書畵舫)』과 『식고당서화휘고(式古堂書畵彙考)』에 있고, 미불의 자화상에 대한 기록이 『해악유사(海岳遺事)』에 보인다. 원대의 조맹부(趙孟頫)와 예찬(倪瓚), 명 · 청대의 심주(沈周), 항성모(項聖謨), 양계당(楊繼棠), 나빙(羅聘), 화암(華岩), 임웅(林熊) 등의 자화상과 석도(石濤)의 자사종송소상(自寫鍾松小像) 등은 너무나 잘 알려진 자화상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당대(當代)의 대표적인 사대부 화가들이다. 자화상은 주로 화업(畵業)을 생업으로 하는 화원(畵員)보다는 여기적(餘技的)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내용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록상으로 보면, 이미 고려시대에도 있었던 듯하다. 「공민왕조경자사도(恭愍王照鏡自寫圖)」가 허목(許穆)『미수기언(眉叟記言)』에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매월당집(梅月堂集)』에서 김시습(金時習)의 자화상이 확인된다. 김시습은 생전에 노 · 소(老少) 2상을 자사(自寫)하고 “모습은 지극히 약하며 네 말은 분별이 없으니 구렁 속에 빠져 마땅하다.”는 내용의 자찬문(自讚文)을 지었다 한다. 그러나 현재 무량사(無量寺)에 전해 오는 김시습상이 자화상인가의 여부는 속단하기 어렵다.

18세기에 들어오면 「윤두서 자화상」(국보, 1987년 지정)을 비롯하여 이광좌(李光佐), 강세황(姜世晃) 등의 자화상이 전해 온다. 이광좌는 자신의 자화상에 스스로 논박한 내용의 찬문을 곁들여 날카로운 심미적 안목을 말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화상 가운데 단연 걸작은 「윤두서 자화상」이다.

지본수묵(紙本水墨)의 이 자화상은 소폭 가득히 안면만을 사출하였다. 이른바 서양 미학에서 지적하는 자아 인식이 수준 높게 묘사되어 있다. 우선 화면은 관람자가 정시(正視)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박진감이 넘친다. 마치 자신과 대결하듯 그린 이 자화상은 전후를 막론하고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화법상으로는 당대의 화법을 응용하여 안면에 무수한 붓질을 가해서 그 붓질이 몰리는 곳에서는 어두운 부위가 형성되었다. 점정(點睛)의 맑음이 전신(傳神)의 효과를 거두고 연발수(連髮鬚) 형태의 수염은 안면을 떠밀듯이 부각시키고 있다.

자화상 가운데 태서법(泰西法)의 영향 하에 서양화적 필법을 구사하여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작가로는 강세황이 있다. 강세황 자화상으로는 임희수(任希壽) 필(筆) 『전신화첩(傳神畵帖)』에 들어 있는 원형(圓型)의 자화상도 있지만, 강주진(姜周鎭) 소장본이 더욱 뛰어나며 당시 그가 매료되어 있던 도말식(塗抹式 : 발라서 드러나지 않게 함)의 필법을 잘 보여준다. 강세황 자화상은 이 밖에도 강영선(姜永善) 소장본이 있다. 이것은 오사모에 짙은 옥색 도포 차림을 한 좌안7분면의 전신부좌상(全身趺坐像)이다. 안면에서 도말 처리의 시초를 보이고 있으며, 음영이 그늘진 부위 외에는 다 들어가 있다. 옷주름 처리에도 옥색 도포에 짙은 옥색 선을 긋고, 이에 덧붙여 같은 계열로 선염(渲染)하여 굴곡진 질감을 나타냈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타 초상화의 융성에 비하면 희소한 수량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자화상이라는 장르 자체가 가지는 ‘자아와의 대결’이라는 명제(命題)가 동양의 초상화가 가지는 봉안 · 향사(享祀)라는 기념적 의취(意趣)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울러 초상화란 사실(寫實) 위주의 화목(畵目)이기 때문에 여간한 기량과 관찰력이 겸비되지 않고서는 그 성취를 기대할 수 없다는 데도 그 이유가 있으리라고 본다.

참고문헌

『매월당집(梅月堂集)』
『화가와 자화상』(조선미, 예경출판사, 1995)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열화당, 1983)
『조선사료집성』(조선총독부 편, 한국고전개발학회, 1976)
「화가의 자화상: 18세기 양주화파의 작품을 중심으로」(이주현, 『미술사연구』20호, 2006)
「中國の自畵像」(谷口鐵雄, 『東洋藝術論攷』, 中央公論美術出版,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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