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48㎝, 가로 73㎝. 1796년에 화원(畵員) 이명기와 김홍도가 합작하여 이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서직수 초상은 동파관(東坡冠)에 주의(周衣 : 두루마기)차림으로 흑색 세조대(細條帶)를 두르고 버선발로 실내에 서 있는 전신상이며, 화폭의 우측 상단에는 서직수의 자찬기(自贊記)가 적혀 있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인 서직수(徐直修)는 1735년생으로 자는 경지(敬之), 호는 십우헌(十友軒)이며 영의정을 지낸 서명균(徐命均)의 삼종질이다. 1765년(영조 4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오직 서화만을 즐기며 일생을 지냈다.
초상화에서 안면은 백묘적 선묘라기보다는 선염기에 의존하여 처리되어 있으며, 치켜 올라간 눈매와 다문 입매, 그리고 가볍게 취한 공수자세를 통해 단아한 유학자의 풍모가 전달되고 있다. 의습처리 역시 간략하면서도 질감이 잘 묘출되어 있다. 그러나 버선을 신은 발의 양태는 지면을 딛고 선 느낌을 주지는 못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초상화에서 수족의 처리가 미숙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이 초상화는 이명기가 얼굴 부분을, 김홍도가 몸체를 그림으로써 당대의 저명한 두 화사가 합작했다는 사실로도 주목되지만, 우리나라 초상화에서는 보기드문 전신입상(全身立像)이라는 상용(像容)으로도 주의를 끌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