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만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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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조선 후기의 무신 김중만을 그린 초상화.
이칭
  • 이칭김중만장군영정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선미 (성균관대학교, 회화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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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김중만을 그린 초상화.

내용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김중만은 1712년 무과에 급제한 뒤 1728년 3월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한 무신으로, 공조판서 겸 오위도총부도총관(工曹判書兼五衛都摠府都摠管), 충청도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를 지냈다. 김중만의 무공을 높이 상찬한 영조의 어명으로 그려진 초상이다.

대본은 오사모단령(烏紗帽團領)의 정장관복을 하고 공수자세를 취한 전신좌상이다. 쌍학문양(雙鶴紋樣)의 흉배, 학정금대(鶴頂金帶)는 문관 종2품 때의 도상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1728년경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책봉된 뒤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을 때 그려진 초상화로 추정된다.

형식은 권희학(權喜學), 조문명(趙文命) 등 당시의 분무공신상과 동일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높은 사모, 갈매색의 단령, 의복의 각진 윤곽선, 호피 깔린 의자, 족좌대의 형태 등이 모두 공통적 특징이다. 안면은 갈색기가 돌며 이목구비의 윤곽은 완연하고 안면의 요철(凹凸) 부위에는 확실한 음영이 묘사되었다.

소본 2폭 중 1본은 공신 화첩이며, 1본은 족자 형식의 소폭이다. 그 중 공신화첩은 한쪽에 그의 이력을, 맞은편에 화상을 곁들인 형식을 보여준다. 이 두 초상화는 화법이 똑같으나 공신화첩에서는 해태 흉배, 족자형식에서는 쌍학 흉배가 묘사된 점이 다르다.

이들 3점의 초상화는 그의 공신책록을 기념하기 위한 공신상 형식의 도상으로서 상용형식(像容形式)이나 초상화법에 있어서 매우 주목되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 -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열화당,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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