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필자미상.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60㎝, 가로 105㎝.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양좌영각(良佐影閣)에 봉안되어 있었다. 조선 초기 공신도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귀중한 초상화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일장(日章), 호는 송재(松齋). 손현검(孫玄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손등(孫登)이고, 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손사성(孫士晟)이다. 어머니는 권명리(權明理)의 딸이다. 그는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적개공신에 오르고 후에 안동부사와 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양민공유사(襄敏公遺事)』 중 양민공연보(襄敏公年譜)에 의하면, ‘헌종황제성화12년병신(憲宗皇帝成化十二年丙申)에 상명충훈부도화제공신영상 사급장우본가(上命忠勳府圖畫諸功臣影像 賜給藏于本家)’라 하여, 1476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화상의 제작 동기는 적개공신 책봉이지만, 실제로 이 초상화가 그려진 시기는 적개공신호가 내려진 세조 13년으로부터 거의 10년이 경과한 후가 된다.
현재 손소상의 화폭 오른쪽 상단에는 주서(朱暑)로 ‘右鷄川君孫 俟昭之眞 成化十二年 丙申 上命忠勳府圖諸功臣影焉賜 時俟 年四十四爾(우계천군손 사소지진 성화12년 병신 상명충훈부도제공신영언사 시사 연사십사이)’라는 표제가 쓰여져 있는데, 이것은 후세에 써 넣은 것으로 보인다.
초상화의 전체적인 형식은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의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서, 화폭은 세 폭을 이은 연폭(聯幅)으로 되어 있다. 오사모(烏紗帽)에 아청색(鴉靑色) 단령(團領)을 입고 공수자세(拱手姿勢: 두 손을 마주 잡음)를 취하고 있으며 왼쪽 단령의 트임새로 비치는 안감과 녹색의 첩리(帖裡: 철릭), 그리고 공수한 옷 틈으로 보이는 흰 속옷 소매, 족좌대 위에 나란히 놓여진 백피혜(白皮鞋), 자리가 깔리지 않은 바닥 등은 현재 전해오는 다른 적개공신상들, 이를테면 전 오자치 초상(보물, 1994년 지정)이나 장말손 초상(보물, 1969년 지정) 등의 특징과 유사하다.
이 초상화는 조선 초기 회화가 드문 현 실정에서 초상화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