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소 초상

  • 예술·체육
  • 작품
  • 국가문화유산
조선 전기의 무신인 손소(孫昭, 1433∼1484)를 그린 초상화.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선미 (성균관대학교, 회화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손소초상 미디어 정보

손소초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의 무신인 손소(孫昭, 1433∼1484)를 그린 초상화.

내용

199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필자미상.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60㎝, 가로 105㎝.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양좌영각(良佐影閣)에 봉안되어 있었다. 조선 초기 공신도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귀중한 초상화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일장(日章), 호는 송재(松齋). 손현검(孫玄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손등(孫登)이고, 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손사성(孫士晟)이다. 어머니는 권명리(權明理)의 딸이다. 그는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적개공신에 오르고 후에 안동부사와 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양민공유사(襄敏公遺事)』 중 양민공연보(襄敏公年譜)에 의하면, ‘헌종황제성화12년병신(憲宗皇帝成化十二年丙申)에 상명충훈부도화제공신영상 사급장우본가(上命忠勳府圖畫諸功臣影像 賜給藏于本家)’라 하여, 1476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화상의 제작 동기는 적개공신 책봉이지만, 실제로 이 초상화가 그려진 시기는 적개공신호가 내려진 세조 13년으로부터 거의 10년이 경과한 후가 된다.

현재 손소상의 화폭 오른쪽 상단에는 주서(朱暑)로 ‘右鷄川君孫 俟昭之眞 成化十二年 丙申 上命忠勳府圖諸功臣影焉賜 時俟 年四十四爾(우계천군손 사소지진 성화12년 병신 상명충훈부도제공신영언사 시사 연사십사이)’라는 표제가 쓰여져 있는데, 이것은 후세에 써 넣은 것으로 보인다.

초상화의 전체적인 형식은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의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서, 화폭은 세 폭을 이은 연폭(聯幅)으로 되어 있다. 오사모(烏紗帽)에 아청색(鴉靑色) 단령(團領)을 입고 공수자세(拱手姿勢: 두 손을 마주 잡음)를 취하고 있으며 왼쪽 단령의 트임새로 비치는 안감과 녹색의 첩리(帖裡: 철릭), 그리고 공수한 옷 틈으로 보이는 흰 속옷 소매, 족좌대 위에 나란히 놓여진 백피혜(白皮鞋), 자리가 깔리지 않은 바닥 등은 현재 전해오는 다른 적개공신상들, 이를테면 전 오자치 초상(보물, 1994년 지정)이나 장말손 초상(보물, 1969년 지정) 등의 특징과 유사하다.

이 초상화는 조선 초기 회화가 드문 현 실정에서 초상화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 -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열화당, 198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