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새벽 5시김상도(金相道) 소령이 함장인 해군함정(YMS-509)은 해군 본부로부터 긴급출동 전문을 받고 묵호를 출항하여 북상하였다.
7시 20분 옥계해상에 이르러 한국 해군함정과 유사한 함정 1척을 발견하고 국제발광신호로 수하를 발신하였다. 그러나 응답 대신 상대 함정에서는 포격을 해왔으며 마스트깃발로 북한 해군함정임이 판명되었다.
이에 한국의 37밀리 포와 중기로 사격을 시작하여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다. 북한 함정은 40밀리 2연장 기관포가 있고 속력도 509정보다 빨랐다.
509정은 포의 조준장치가 미비한 점을 만회하려고 500야드까지 접근하면서 근접 사격과, 파도를 이용하여 선체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순간을 이용하여 정조준 사격하는 방식으로 상대 함대에 명중시켰다.
50여 분간의 교전 끝에 북한 함정은 북으로 도주하고 509정도 피격된 선수현측의 침수를 막기 위하여 오전 8시 묵호로 귀항하였다. 긴급 보수를 마친 509정은 오전 9시 50분묵호를 다시 출항하여 그날 오후 3시경 옥계 북방 3마일 지점에 이르렀으며, 때마침 상륙중인 북한 공산군을 발견하고 접근하여 포격을 가하였다.
이에 공산군은 양륙작업을 중지하고 산으로 분산, 도주하였다. 509정은 해안에 있던 공산군의 상륙정 1척을 격파하고, 발동선 1척을 나포하였다.
이 해전은 6·25전쟁이 일어난 당일 북한 해군과 최초로 접촉한 해전으로 빈약한 무장을 갖춘 509정이 서전을 장식하여 북한의 무장 수송선 1척 격퇴, 상륙정 1척 격파, 발동선 1척 등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옥계에 상륙을 기도하는 북한 공산군을 교란, 지연시킴으로써 아군이 철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데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