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건물. 198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이 지방의 초등교육을 실시하던 서당건물로서, 송시열(宋時烈)이 고향인 이곳 옥천으로 낙향했을 때인 1650년(효종 1)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 중턱을 깎아 만든 일곽의 대지에 산쪽을 바라보며 북향을 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정면 3칸 중 2칸은 우물마루를 깐 대청으로 하여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옆 1칸에는 온돌방을 놓아 숙식을 하도록 하였다.
구조는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는데 남쪽 중앙칸 2개소에만은 두리기둥을 세웠다. 건축양식은 간결한 굴도리집계통이며, 기둥상부에 일반적으로 건물 내외 방향으로 끼워져 있는 양봉(梁奉)이 건물 안쪽으로만 있다.
지붕틀은 5량가구로서 종량(宗梁 : 대들보 위에 동자기둥을 양쪽에 세우고 그 위에 건너지른 보) 위에는 제형대공(梯形臺工)을 세워 종도리와 함께 지붕무게를 받쳤다. 마루에는 ‘景賢堂(경현당)’ · ‘龍門影堂(용문영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용문영당은 ‘우암 송시열 초상’을 봉안했던 건물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근래에 사라졌다. 우암 송시열 초상은 2008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