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출신으로, 본성은 김씨(金氏), 초명은 김여주(金汝舟)이다. 신라 태종무열왕의 후손으로 왕씨는 사성(賜姓)이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충숙왕 초 규정(糾正)을 거쳐 1321년(충숙왕 8) 좌사보(左司補)가 되었다. 이 때 서경낭장(西京郎將)으로 있던 폐인(嬖人: 간신) 이인길(李仁吉)의 첩부(妾父) 최득화(崔得和)가 수주(隨州)의 수령에 임명되었는데, 우사보 이청(李菁)과 함께 그의 고신(告身)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뒤에 우사의(右司議)·밀직부사·집의(執義)를 지냈고, 1339년(충혜왕 복위년) 조렴(趙廉) 등과 함께 조적(曺頔)의 난에 가담하였다가 난이 진압되자 이듬해 파직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