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경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간의, 이부시랑, 사재경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왕굉(王肱)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122년(예종 17)
  • 사망 연도1185년(명종 15)
  • 본관개성(開城)
  • 출생지미상
  • 주요 관직좌정언|기거주|중서사인|간의|이부시랑|사재경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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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간의, 이부시랑, 사재경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개성(開城)이며, 초명은 왕굉(王肱)으로, 삼한공신 왕희순(王希順)의 8대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의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경산부쉬(京山府倅)가 되어 청백하였으며, 임기가 만료되어 집에 돌아와서도 가난하게 지내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이 때 재상 이지무(李之茂)의 장수를 비는 소문(疏文)을 작성하였는데, 문장력을 인정받아 국학학유(國學學諭)에 임명되었다가 동문원녹사(同文院錄事)에 이르렀다.

1170년 명종이 즉위한 뒤 금나라에서 순문사(詢問使)가 자주 왔을 때 지은 사명(詞命)이 왕의 뜻에 맞아 감문위녹사(監門衛錄事)가 되었다. 이후 좌정언(左正言)·기거주(起居注)·중서사인(中書舍人)을 지내고, 간의(諫議)·이부시랑(吏部侍郎)을 거쳐 사재경(司宰卿)으로 간의를 겸직하였다.

왕세경은 성품이 순후하고 남의 착한 것을 드러내기 좋아하여 임금이 항상 직신(直臣)이라 불렀다. 그러나 간성(諫省)에 있은 지 9년 동안 한번도 의견을 말함이 없어서 여론이 보잘것없이 여겼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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