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546년(명종 1)에 정문채(鄭文采)의 별장 일부로 건축되었다 하는데, 그 후 수차례의 중수와 개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9년 5월 2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2024년 8월 29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보물로 승격되었다.
용계천의 서쪽 기슭 높은 지대 위에 자연석 담장을 돌리고 서북향으로 건물을 배치하고, 좌 · 우 측면 및 후면의 담장에는 일각문을 세워 출입하게 하였다. 전면 5칸과 후면 어칸에는 마루를 깔았고, 후면 어칸 좌우에는 각각 2통칸의 온돌방을 설치하였다.
개방된 대청 전면에는 헌함(軒檻 : 대청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깐 좁은 마루)을 돌려 누마루처럼 꾸몄는데, 좌 · 우 측면에는 벽을 치고 쌍여닫이 널문을 달았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다. 공포(栱包)는 익공계인데, 익공의 쇠서나 양봉은 운각(雲刻)과 연봉(蓮峰)으로 조각되어 조선 후기적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가구는 5량가로 도리 방향의 중앙열 기둥이 대량의 아래에 서 있고, 대량 위에는 초각(草刻)된 대공이 노출되어 있어, 처음에는 중앙열 기둥과 방이 없는 누마루 정자였음을 알 수 있다. 창건연대는 명종대, 즉 조선 중기라 하나 후에 중수와 개수를 거쳐 현재는 조선 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