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참 또는 용천역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역(驛)의 명칭이 참(站) 또는 관이라고 불린 데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관은 사신 숙소로서의 의미를 지닌 ‘관사(館舍)’에서 유래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에는 몽고 역참제도의 영향을 받아 참이라고 하였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역으로 통일되었다. 용천관은 황해도 서흥도호부 내에 설치된 역참으로서, 용천의 유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부(府)의 남쪽 22리에 있다. 산기슭에서 물이 솟아 나와 내[川]를 이루었는데 이름을 용천이라 한다.”라고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 용천관(참)은 고려시대부터 설치되어 황해도 지방의 중요한 역로의 하나인 금교도(金郊道)에 속하는 역참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참로찰방(站路察訪)의 관할 아래 강음(江陰)의 금교역(金郊驛)-우봉(牛峯)의 흥의(興義)-평산(平山)의 금암(金巖)-평산의 보산(寶山)-평산의 안성(安城)-서흥(瑞興)의 용천(龍泉)-봉산(鳳山)의 검수(劍水)-봉산의 절령(岊嶺)-서흥의 동선(洞仙)-황주(黃州)의 경천(敬天)역까지를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