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대사는 속명이 신수영(申壽英, 1878∼1961)으로 경상북도 출신이며, 경상북도 안동 삼정산의 유하사(遊夏寺) 주지로 있다가 1945년 11월 10여 명의 신도를 데리고 계룡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다음해 신도안에 입주하여 석계리 백암동 입구에 팔모정(八母亭)과 법정사(法正寺)를 짓고 다시 그 아래에 법룡사(法龍寺)를 창건하였다.
천진전(天眞殿)을 세워 단군영정을 모셨고, 대종교 신도안지부의 간판을 달기도 하였다. 1961년 무심대사 사망 후 지정영(池正永)이 대사가 팔모정을 지으라는 무심대사의 영계(靈啓)를 받았다고 주장하자, 이수학은 신기수(申箕洙) 등과 함께 팔모정을 건립하고 유불선 삼교합일의 장소라는 뜻에서 삼일전(三一殿)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후 이 전각들은 이수학이 ‘용화동승회’를 조직하여 법정사를 본부로 총괄하다가 유림들을 중심으로 한 ‘국조봉숭회’에서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 뒤에는 계룡산을 찾는 모든 종교인들의 기복도량으로 이용되었으며, 무심대사의 족인이자 제자인 신기수가 법룡사와 천진전을 관리하고, 용화동승회는 법정사를 근거로 이혹호(李或鎬)가 이끌고 있었다.
계룡산의 이인이라 불리던 무심대사가 생존하였을 당시에는 수많은 종교인들이 운집하였으나 교단의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고, 이수학과 이혹호가 이끄는 용화동승회는 대전과 유성 부근에 약간의 신도들이 있을 뿐 별다른 활동과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수학이 사망하고, 1984년 계룡산 민간인 철거작업으로 모든 전각들이 철거되자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교리는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유교·도교·산신신앙·단군신앙·용왕신앙·무속신앙 등 다양한 형태의 신앙을 혼합하고 있으며, 신앙대상은 미륵불을 중심으로 하여 관세음보살·단군·옥황상제, 그리고 유불선삼일대성위(儒佛仙三一大聖位)를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