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청양읍 북쪽 우산성에 위치하고 있는 둘레 1,081m의 테뫼식(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 석축산성이다. 성벽은 잘 남아 있는 편인데, 자연지세를 이용한 동쪽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석축으로 되어 있다.
남쪽 성벽은 이 산성의 주향(主向)이 되는 곳으로, 협축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으며, 지형에 따라서는 외축만 한 곳도 있다. 30×20㎝, 40×20㎝ 정도의 돌을 사용해서 공돌쌓기로 축조하였는데, 현존 높이는 7m이다. 성벽 내부는 평탄하게 정리를 하였으며, 배수구 역할을 하게 위해서인지 2∼3m 정도로 호(壕)를 파놓고 있다.
동쪽 성벽과 남쪽 성벽이 만나는 부분에는 성벽의 높이가 다른 지역보다 높아 성의 너비가 8∼9m에 이르며 현재 높이는 4m 정도이다. 북쪽 성벽은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과 연결되어 있는 지역으로, 축성기법은 동남쪽과 같다. 동남쪽 모퉁이와 동북쪽 모퉁이에는 치성(雉城: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성벽)이 부설되어 있다.
문지는 남서문지·남문지·북문지의 3곳이 남아 있다. 남서문은 주문(主門)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세로 보아 배수구도 이곳에 설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남문지는 현재의 남서문지에서 약 2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나 이 또한 파괴가 심하여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북문은 기존의 성벽보다 약 2m 정도 내부에 축조한 듯한데 너비는 약 3.9m, 높이는 4m정도이다. 성의 내부시설로는 북문지 안쪽에 50×50m의 건물지가 있고, 이 건물지 서편에 너비 19m, 깊이 2m의 저장공이 축조되어 있다. 지리지에는 성안에 2개소의 우물터가 있다고 전하고 있으나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성안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격자문·승석문·물결무늬 등이 새겨진 백제시대 토기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후대의 것으로는 고려시대 어골문와편(魚骨文瓦片)도 건물지에서 약간 수습되고 조선시대 와편도 몇점 수습되어 이 성의 존속 연대를 짐작케 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