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조(崔子調)·하림조(河臨調)라고도 한다. 성종 때 거문고악곡에서 사용되었던 악조의 하나인 우식조는 태주궁계면조(太簇宮界面調)인 최자조처럼 5음 음계로 구성되었고, 태주를 중심음으로 삼은 계면조 선법(旋法)이었다.
즉, 우식조는 중심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조명(調名, key)과 음악구조적 특징을 나타내는 선법명(mode)을 두루 갖춘 악조명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세종 때 봉상판관(奉常判官) 박연(朴堧)의 상소에 의하면 1430년(세종 12) 2월 당시 우식조는 최자조·탁목조(啄木調) 등과 함께 거문고 음악에서 사용되었지만 그 탄법(彈法)만 남고 가사를 잃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우식조의 설명으로 미루어 보아 우식이라는 명칭은 본래 거문고의 악조명이라기보다는 가사를 지닌 악곡명이었던 것 같고, 그 명칭은 다른 한편으로 402년(실성왕 1)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던 신라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이 박제상(朴堤上)의 공로로 무사히 귀국한 것을 기뻐하여 눌지왕이 지었다는 「우식곡(憂息曲)」 및 통일신라시대의 「우식악(憂息樂)」과 같은 맥락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