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때, 정용기의 산남창의진에서 진보 지역에서 소모 활동을 전개한 의병.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8월 정용기가 아버지 정환직(鄭煥直)의 주선으로 석방되어 의진을 재구성할 때 다시 의진에 투신, 신성·청송·자양 등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여 전과를 올렸다. 같은 해 10월 정용기가 전사하자 정환직을 의병대장에 추대한 뒤 신령·의흥·안동·청송·청하 등지의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환직 역시 같은 해 12월 일본군에 잡혀 순국함으로써 의진이 큰 타격을 받게 되자, 다시 최세한(崔世翰)을 의병대장에 추대하고 서종락(徐鍾洛) 등과 함께 활약하였다.
그 뒤 1908년 2월 서주일(徐周一)의 휘하에 있으면서 이재원(李在元)과 박태래(朴泰來)로부터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일본군에 잡혀 1910년 2월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독립유공자공훈록』1(국가보훈처, 1986)
- 『독립운동사』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산남의진유사』(산남의진유사간행위원회, 1970)
- 「대구지방재판소판결문(大邱地方裁判所判決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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