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문사 석조 사천왕상

  • 예술·체육
  • 작품
  • 남북국
  • 국가문화유산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상.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3년
  • 배재호
  • 최종수정 2026년 04월 23일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미디어 정보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청도 운문사 석조 사천왕상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상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각각 162㎝, 151㎝, 163㎝, 154㎝이다. 석조여래좌상 좌우에 각각 2구에 배열되어 있으며, 장방형의 판석 위에 고부조로 새겨 있다. 사천왕상들은 모두 갑옷을 걸치고 무기를 들고 발 아래 생령을 밟고 서 있다. 7등신에 가까운 비례를 갖추고 있지만, 얼굴을 제외하고는 양감이 줄어든 상태이다. 형태로 미루어 보아 특정한 석조물의 부재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키워드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상.

개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雲門寺) 작압전(鵲鴨殿)에 봉안되어 있는 4구의 석조 사천왕상이다. 크기는 각각 162㎝, 151㎝, 163㎝, 154㎝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운문사 석조 사천왕상이 운문사 작압전에 언제부터 봉안되어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운문사 석조 여래 좌상 좌우에 각각 2구씩 배열되어 있으며, 사천왕상과 관련되는 문헌 기록이나 명문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조성 배경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운문사 석조 사천왕상의 형태를 미루어보아 특정한 석조물의 부재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내용

운문사 석조 사천왕상은 불교 세계관에서 우주의 중심에 서 있다고 말하는 수미산(須彌山) 중턱의 동서남북 네 하늘나라를 지키는 사천왕을 표현한 것이다. 사천왕이란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을 말한다.

운문사 석조 사천왕상은 장방형의 판석 위에 고부조로 새긴 것이다. 사천왕상들은 모두 원형의 두광(頭光)을 가지고 있으며, 머리카락을 묶은 띠가 머리 양옆에서 위로 솟구쳐 올라가 있다. 또한 갑옷을 걸치고 무기를 들고서 발 아래 생령(生靈)을 밟고 서 있다.

석조사천왕상은 굳게 다문 입과 늘씬한 체구, 넓은 어깨 등에서 붓다와 불법(佛法) 수호의 역할을 맡은 사천왕의 성격을 충분히 보여준다. 갑옷을 입음으로써 생길 수 있는 경직된 느낌을 한쪽 다리를 살짝 내밀거나 구부림으로써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운문사 석조 여래 좌상의 우측 첫 번째 서 있는 불탑(佛塔)을 든 천왕상이 북방을 지키는 다문천왕이라는 것을 제외하곤 나머지 존상들의 존명은 확정할 수 없다. 다문천왕은 정면관(正面觀)에 가까운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내려뜨린 오른손으로 천의(天衣) 자락을 잡고 있으며, 어깨까지 들어 올린 왼손으로는 불탑을 떠받들고 있다. 그 오른쪽의 천왕상은 왼쪽 무릎을 살짝 굽힌 좌향(左向)의 존상으로, 오른손으로는 삼고저(三鈷杵)를 잡고 있으며, 왼손은 허리 부분에 두어 천의 자락을 잡고 있다. 석조여래좌상의 왼쪽 첫 번째 천왕상은 왼쪽 무릎을 살짝 구부린 모습으로,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올려 화염 보주(火焰寶珠)로 보이는 물건을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오른쪽 허벅지 위에 살짝 올려 놓았다. 그 바깥쪽에 있는 천왕상은 오른쪽 무릎을 구부린 상태로 양 손으로 칼을 쥐고 있다.

운문사 석조 사천왕상은 7등신(等身)에 가까운 비례를 갖춘 늘씬한 모습이지만, 얼굴을 제외하곤 양감이 줄어든 상태이다. 이들 천왕상에 보이는 양식적인 특징들은 통일신라시대 880년에 조성된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普照禪師塔)의 사천왕상들과 비슷하여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특징

운문사 석조 사천왕상은 원래 석탑 등 석조물의 부재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상의 얼굴에는 통일신라시대 8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지만, 조형적으로 길어지고 평판적인 느낌이 드는 등 통일신라시대 9세기 존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석조사천왕상은 사천왕상 뿐만아니라 그들이 밟고 있는 생령(生靈)의 표정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운문사 석조 사천왕상은 통일신라시대 9세기의 불탑 부재로 추정되어 당시 불탑의 도상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사천왕상의 도상적인 특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통일신라시대 9세기의 사천왕상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참고문헌

  • - 『한국의 사찰문화재』대구광역시·경상북도Ⅰ(문화재청·대한불교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 2007)

  • - 「운문사 작갑전 석조석가불좌상과 사천왕상의 도상 연구」(문명대, 『강좌미술사』 50,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8)

  • - 「신라사천왕상의 연구」(문명대,『불교미술』5, 동국대학교박물관, 1980)

주석

  • 주1

    : 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 우리말샘

  • 주2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탱화 따위에서 머리 언저리에 동그라미를 그려 나타낸다. 우리말샘

  • 주3

    : 양쪽 끝이 세 갈래로 된 금강저. 밀교에서 쓰는 법구(法具)의 하나이다. 우리말샘

  • 주4

    :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습의 보배로운 구슬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