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과의군도지휘사, 동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02년(충렬왕 28)
본관
원주(原州)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삼사사|중경유수|과의군도지휘사|동지밀직사사|무략장군정동행중서성도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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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과의군도지휘사, 동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
개설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아버지는 중찬(中贊) 원부(元傅)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성격이 매우 호협하여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좋아하였으며, 유학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몽고어를 배워 여러 번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따라 원나라에 출입하여, 원나라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276년(충렬 2) 3월 중랑장(中郎將)으로 응방(鷹房)의 관리를 규치(糾治)하였으며, 삼도인물추고별감(三道人物推考別監)이 되었다. 제국대장공주의 뜻을 거슬러 장형을 받기도 하였다.

1280년 7월 장군으로 원에 파견되었으며, 충렬왕이 1283년 7월 응방도감(鷹坊都監)을 설치하자 그 부사가 되어 여러 차례 매를 바치러 원나라에 다녀왔다. 1290년 1월 대장군이 되었으며, 1292년 1월에는 왕명으로 원나라의 요양로(遼陽路)에 가서 1259년(고종 46) 이후로 원나라에 잡혀간 사람과 물건을 조사하여 되찾아왔다. 당시 제국대장공주의 겁령구(怯怜口)로 고려에 와서 권세를 부리던 인후(印侯, 忽刺歹)와 사돈을 맺고 함께 세도를 부려 횡포를 자행하였다.

1295년 1월 좌부승지, 이듬해 8월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거쳤으며, 1297년 5월에는 사신으로 원나라에 가서 제국대장공주의 상(喪)을 알렸다. 1298년 5월 중경유수(中京留守) 과의장군(果毅將軍) 도지휘사(都指揮使)가 되었고, 이듬해 7월에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올랐다.

1299년 밀직(密直)으로 만호 인후(印侯) 등과 함께 만호 한희유(韓希愈) 등을 체포하였다가 5월 파면되었다. 일찍이 원나라의 무략장군 정동행중서성도진무(武略將軍征東行中書省都鎭撫)가 되어 금부(金符)를 받았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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