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216년(고종 3) 연주(延州 : 지금의 평안북도 영변)의 원림역에서 거란의 유민들을 격파한 전투.
역사적 배경
경과
이에 고려는 중군ㆍ우군ㆍ후군의 3군을 조직하고 상장군 노원순(盧元純), 상장군 오응부(吳應富), 대장군 김취려(金就礪)를 각 군의 병마사로 삼아 이를 막게 하였다. 다음 달에는 조양진(朝陽鎭 : 개천)에서 3군과 갑장별감(甲仗別監) 유성장(劉性藏) 등이 거란군과 싸워 처음으로 승전하였다.
그 뒤로도 연주(連州 : 지금의 평안북도 개천)ㆍ창주(昌州 : 지금의 평안북도 창성)ㆍ구주(龜州 : 지금의 평안북도 구성) 등지에서 거란군과 싸워 이겼다.
이 때 거란군은 창주에서 연주의 개평역(開平驛)과 원림역으로 옮겨 진을 쳤는데, 신기(神騎)의 장수를 보내 이들을 추격해 신리(新里)에서 190명을 죽이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고려의 3군은 연주에 주둔해 원림역을 공격하였다. 우선 광유(光裕)ㆍ연수(延壽)ㆍ주저(周氐)ㆍ광세(光世)ㆍ군제(君悌)ㆍ조웅(趙雄) 등 여섯 장수는 사자암(獅子巖)을 지키게 하고, 영린(永麟)ㆍ적부(迪夫)ㆍ문비(文備) 등으로 양주(楊州)를 지키게 하였다.
이튿날 이들 아홉 장수가 거란군을 일제히 공격해 76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고, 수많은 말ㆍ노새ㆍ소ㆍ패인(牌印)ㆍ병장기를 노획하였다.
결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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