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신오쿠보 한인촌은 도쿄도 신주쿠구에 위치한 한국식의 음식점, 주점, 패션 가게, 잡화점 등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인들이 중국인들 사이에 섞여서 신주쿠의 오쿠보역과 신오쿠보역의 철교 아래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살았다. 1950년 롯데제과 공장이 설립되면서 일본 각지에서 한인들이 모여 들기 시작하였다. 전철역이 가까워서 교통이 편리하고 임대비가 저렴하여 한국인 여행자를 대상의 업소가 증가하였고, 한류 붐으로 일본인 방문자도 급증하였다.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지만 오쿠보·햐쿠닌초 일대를 “코리아타운”이라고 부른다.
행정 구역으로 말하자면 도쿄(東京)도 신주쿠(新宿)구의 오쿠보(大久保) 12정목(丁目) 및 햐쿠닌초(百人町) 12정목을 중심으로 한국식의 음식점, 술집, 패션 가게, 잡화점 등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말한다. 신주쿠의 오쿠보 · 햐쿠닌초 일대를 “코리아타운”이라고 하는 호칭은 현재 모여 사는 한인들이나 한류 붐 이후에 이 곳을 찾는 일본인들에 의해 임의적으로 사용된 것이지, 공식적으로 표방된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 일용노동자나 조선인 및 중국인들이 오쿠보역이나 신오쿠보역의 철교 밑에서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살았다. 신오쿠보 역 근처에서는 귀환한 군인들이 악기를 수리 및 판매하는 점포를 열고 있었다. 즉 패전 직후에 형성된 슬럼가에 해방 전부터 일본에 거주하던 소수의 한인들이 일본인, 중국인들 사이에 섞여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1950년에 재일 한인 1세 신격호(일본명 시게미츠 다케오(重光武雄))가 신오쿠보역 근처에서 롯데제과 공장을 설립하자, 일본 각지에서 일거리를 얻고자 한인들이 모였다고 한다. 1960년대에는 노동자 숙박업소도 많이 생겨 도쿄에서 산야(山谷)와 유사한 일용 노동자의 거리가 형성되었다.
1987년 일본의 국영철도가 민영화되면서 이 오쿠보의 슬럼가를 동일본 JR주식회사가 매입하였는데, 기존의 한인 주민들 중에서 그 때 받은 보상금으로 신오쿠보 역 근처에서 주점을 개업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쿠보 지역은 전철역이 가까워서 교통이 편리했으며, 1980년대까지 부동산 투기 붐에서 제외된 곳이었기에 그다지 부동산이 비싸지 않았다. 1980년대 말 이후 한국의 외국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한국인 뉴커머들이 이 곳에 유입하여 임대가가 저렴한 집을 빌려서 한국인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숙업을 하거나 음식점을 개업하기 시작하였다.
철도역과 길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오쿠보 (大久保) 거리를 기준으로 하여 동일본 JR의 추오(中央)선 오쿠보역 부근과 야마노테(山手)선 신오쿠보(新大久保)역 부근을 직선으로 잇고, 거기서부터 신주쿠구 가부키초(歌舞伎町)와의 경계선이 되는 쇼쿠안(職安) 거리까지에 이르는 중간 지역을 일컫는다.
오쿠보와 햐쿠닌초 지역은 슬럼가가 있어서 1980년대 일본의 부동산 투기붐 때에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고 주택이나 점포의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곳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이후 한국인 해외여행이 자유롭게 되면서 이 곳에 한국인 뉴커머들이 서서히 유입되었고, 그들은 낡은 주택이나 상점들을 임대하여 한국인 여행객들을 상대로 간이 숙박업이나 음식점 영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말 이후 그들 중에서 어느 정도 경영에 성공한 사람들이 종래 재일동포들이 하던 야키니쿠(燒肉)점이 아닌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갖춘 음식점이나 주점 그리고 한국 식료품점을 개업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였다. 그 후 도래한 2002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와 2004년경의 제1차 한류 붐은 이 지역을 찾는 일본인들이 급증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 관련의 점포 또한 한층 증가하였다.
최근에 이 지역은 한국의 음식 뿐만 아니라 패션과 음악 등 대중문화 상품을 취급하는 점포들도 급속하게 늘어나, 현재 그들 점포의 총수는 약 280여개에 달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