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 나가타구 한인촌 (Kôbe[] Nagata[] )

인문지리
지명
효고[兵庫]현 고베[神戸]시 나가타[長田]구의 고반초[五番町], 로쿠반초[六番町]을 중심으로 한국식 음식점과 식자재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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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효고[兵庫]현 고베[神戸]시 나가타[長田]구의 고반초[五番町], 로쿠반초[六番町]을 중심으로 한국식 음식점과 식자재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
개설

공식적으로 ‘한인촌(코리안타운)’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효고[兵庫]현 고베[神戸]시 나가타[長田]구의 고반초[五番町], 로쿠반초[六番町]을 중심으로 합성피혁 신발 산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고베전철 아리마[有馬]선의 마루야마(丸山)역 주변의 겐페초[源平町]에도 과거 철도건설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했으나, 지금은 수 세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고베에서는 지역 산업의 꽃이었던 고무공업의 현장에서 기존에 생산하던 고무제품보다 원료를 확보하기 쉬운 폴리염화 비닐을 사용한 합성피혁 신발을 생산하는 공장이 증가하였다. 소위 ‘케미컬 슈즈’라고 불리는 이 나가타구의 합성피혁 신발은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에 편승하여 판매가 급증하였고, 그 제조 공정의 말단에서 종래의 고무공업에 종사하던 수많은 한인들이 하청을 맡아서 일을 하였다. 나가타구의 합성피혁 산업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초에는, 조합기업 304개, 생산액 533억엔, 종업원 총수 6,680명이라는 놀라운 발전을 하였는데, 전체 종업원의 절반이 한인들이었다. 즉 한인 노동력이 고베의 합성 피혁산업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4년의 플라자 합의에 의한 엔고 현상, 1990년대에는 중국에서 저렴한 유사 제품이 수입되면서 생산이 축소되었다. 더욱이 1995년에 고베를 중심으로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해 한인 신발공장의 8할이 조업 불능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래도 당해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일본인 및 기타 외국인들과 협력하여 지진 피해를 극복하였으며, 현재에도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여 판로를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한인 거주자들이 집중한 나가타구에는 한국 관련의 음식점, 식자재점 등도 집중되어 있다. 나가타구는 일본에서 야키니쿠(불고기)점포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형성 및 변천

나가타[長田]구에서 한인들이 집중 거주하는 곳은 2개 지역이다. 먼저 고베전철 아리마[有馬]선의 마루야마[丸山]역 주변에 위치한 겐페초[源平町]에 과거 철도부설 공사에 일했던 노동자들의 한바(공용 밥집)가 있던 자리에 집중 거주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기쿠스이[菊水]산의 기슭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무허가로 주택을 세웠다. 가장 많았을 때는 백 수십 세대가 존재했지만 대부분 타지로 이주하여 지금은 남아있는 세대가 약 30호 정도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고무공장이 모여 있던 나가타구의 고반초[五番町], 로쿠반초[六番町]를 중심으로 집중 거주하고 있었다. 1920~1930년대 일본의 고무공업 현장에는 소위 3D 직업에 속하는 열악한 환경 하에서 수많은 식민지 출신자들이 저렴한 임금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나가타구의 고무공장에서도 한반도에서 도일한 한인들이 저렴한 임금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1936년의 예를 보아도 당시 나가타구 거주 한인 7,719명(고베시 전체거주 한인 약 1만 6천명)의 대부분이 고무공장에서 일했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하자 수많은 동포들과 같이 해방된 조국으로 귀환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고향에 경제적 근거가 없는 사람들은 귀환하지 않고 나가타구에 잔류한 한인들은 생고무가 통제 품목으로 지정되어 원료 확보가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생활하였고, 1948년에 고무제품을 생산 및 가공하는 한인 사업자들이 상호부조를 위해 ‘효고현조선인고무공업협동조합’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나가타구에서 전후 일본의 합성피혁 신발 산업을 지탱하는 노동력이 되었다.

현황

2010년 일본 『국세조사』를 통해 보면 고베시 나가타구에 거주하는 총인구 101,624명 중에서 한국·조선인의 인구가 약 4.6%에 해당하는 4,708명이었다. 이 비율은 효고현 내의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이다.

참고문헌

『神戸電鉄敷設工事朝鮮人犠牲者を調査し追悼する会ニュース』第3号(1994.7.20)
「在日韓国·朝鮮人の生活史の中の震災」(山本かおり, 『阪神·淡路大震災の社会学』第3巻, 昭和堂, 1999)
「(4)ケミカル合衆国 国籍問わない共生社会」(『神戸新聞』, 1998.8.22)
집필자
김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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