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받은 임금으로 살아가는 직업인. 근로자·피용자·피고용인.
개설
내용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자, 즉 임금노동자가 갖고 있는 핵심적인 특징으로 ‘이중의 자유’와 노동력의 상품화를 꼽을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을 통해 노동자의 지위를 얻은 사람들은 두 가지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는데, 하나는 노동자가 봉건시대의 신분적 예속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가 자기의 생산수단, 자본을 갖지 못하여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점을 의미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갖고 있는 자본가에게 자신이 보유하는 노동력을 팔아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게 되었다. 즉 노동자의 노동력이 여느 상품과 같이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거래되는 상품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노동자가 자본가와 더불어 양대 계급을 구성하며 중심적인 생산관계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교환관계가 ‘비대칭적(非對稱的, asymmetric)’ 성격을 갖는 것으로 정의된다. 생산수단을 갖고 있는 자본가와 달리 노동자의 경우 생산수단을 갖지 못하므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못할 때 생계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므로 자본가와의 노동력 판매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력에 대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교환에서 노동자는 대등한 관계로 참여하기 보다는 약자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경제 약자 지위를 인정하여 민주주의가 성숙된 나라에서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자본가와의 노동력 거래에서 이들의 대등한 협상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 제공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헌법 32조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도록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헌법 33조에서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노동자에게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의 32조와 33조에 의거하여 근로기준법이 제정되어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노동조합의 설립과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와 수행조건에 대해 명문화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2조에서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하는 한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근로자 개념에서 모든 직업을 포괄함으로써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 등을 망라하여 그들의 근로기준과 노동권을 보호한다.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근로자는 근로계약관계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므로 타인에 의하여 결정되는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는 자는 근로자라 할 수 없고, 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계약 명칭에 상관없이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하에서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근로기준법에서는 계약상으로 청부 또는 개인 사업주로 되어 있는 사람도 특정 사용자에 대한 실질적인 종속노동관계에 놓여 있다면 노동자로 본다. 다만 근로기준법의 적용은 근로계약관계에 있는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확보하려는 것이므로 실업 중인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개념은 실업 중인 근로자까지 포함하는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 개념보다 좁다고 할 수 있다.
역사와 현황
근대적 임금노동자가 본격적으로 우리 역사의 장에 나타난 것은 개항기에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이다. 이 당시 일본 및 여타 열강국들의 상품판매와 식량 및 광산물의 약탈이 이뤄졌기 때문에 특히 광산과 부두 및 운수 부문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등장하였다. 이처럼 비제조업부문을 중심으로 초기 노동자들이 등장한 점은 산업혁명에 의해 제조업 공장노동자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이 형성된 서구국가들의 경험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1910년 한일합병이 이뤄진 후 취해진 1912년의 「토지조사령」은 농촌의 토지소유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잃고 임금노동의 주된 공급원천으로 전락하였다. 1910년대에는 일부의 가공업을 중심으로 일본자본의 투자가 제한적이나마 꾸준히 늘어나 공장노동자의 수 역시 1911∼1919년의 기간에 14,575명에서 48,700명으로 증가하였다. 1920년 4월 「회사령」이 폐지되어 일제의 식민지공업육성책에 따라 일본자본의 투자가 크게 확대됨에 따라 공장노동자의 수도 가파르게 상승하여 1920년대말에는 10만 명을 돌파하였다. 하지만 1928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수가 118.5만 명으로 추계되어 아직 공장노동자의 비중이 매우 미미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일제가 우리나라를 군수산업의 병참기지로 삼아 공업화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공장노동자의 수가 1943년까지 55만 명으로 증가하였고 전체 노동자(약 200만 명)의 28% 내외 수준에 달할 만큼 큰 신장세를 보였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근대적인 임금노동자들이 형식적으로 양적인 증가세를 보이기는 하였지만, 노동보호입법이 아예 존재치 않은 가운데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과 ‘기아임금’ 그리고 민족적인 차별을 강요하는 전근대적인 노무관리에 시달려야 하였다.
1945년 광복이후 해방정국의 정치적 소용돌이와 남북 분단 그리고 6·25전쟁으로 인해 경제 전반이나 공업생산이 급격히 위축됨에 따라 노동자 규모의 팽창은 일시적으로 둔화되었다. 특히 북한 지역을 중심으로 식민지시대의 산업시설이 편재함에 따라 남한지역의 산업시설은 제한적이었으며, 그나마 6·25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기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월남한 피란민들과 황폐한 농촌으로부터 이탈된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 초과잉공급의 노동시장상황이 1950년대에 계속되었다. 1961년에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정부가 수출산업 중심의 경제개발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임금노동자의 수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1980년대에 걸쳐 산업구조의 변동과 더불어 질적인 구성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1963∼1980년의 기간에 임금노동자의 수가 238.3만 명에서 646.4만 명으로 2.5배 가까이 늘었으며, 같은 기간에 전체 취업자에서 임금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31.5%에서 47.2%로 급증하였다. 이 기간에 여성노동자의 규모 역시 57.4만 명에서 204.9만 명으로 3배 이상 늘어났으며, 전체 노동자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24.1%로부터 31.2%로 증가하였다. 산업별 고용비중에서도 1960∼1980년의 기간에 1차산업이 58.3%에서 35.2%로 감소한 반면, 2차와 3차산업은 각각 11.2%와 20.5%에서 34.0%와 30.8%로 증가하여 이 기간에 제조업 중심의 임노동관계가 가장 빠르게 팽창했음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이후에도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서비스경제의 확대에 힘입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록하면서 노동자의 규모와 고용비중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노동자의 규모는 1989년에 1천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이후에도 계속 증가하여 2010년에는 1,697.1만 명에 이르렀다. 전체 취업자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1990년에 60%를 넘어서 2010년 현재에는 71.2%에 달하고 있다. 2011년 3월 통계청이 실시한 경제활동 인구-부가조사에 따르면, 현재 산업별 노동자 비중에서 농임어업의 1차산업의 비중은 단지 1%에 해당되며, 제조업을 포함한 광공업의 2차산업이 20.7%를 차지하고 서비스부문이 무려 70.7%에 달하고 있다. 또한 같은 조사에 따르면 직업별 노동자의 구성비중에서 생산직(기능-기계조작-조립 및 단순노무)의 비중이 36.7%로 가장 높고, 관리직-전문직 24.1%, 사무직 21.6%, 그리고 서비스-판매직 17.3%이며, 농림어업 종사자의 비중은 단지 0.3%에 그치고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비중이 33.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료) 통계청 2011년 3월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 자료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KLI 노동통계』(한국노동연구원, 2011)
- 『한국의 노동』(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7)
- 『한국 근대 노동사와 노동운동』(김경일, 문학과 지성사, 2004)
-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구해근, 창작과비평사, 2002)
- 『한국로동운동사-해방후편』(김낙중, 청사, 1982)
- 『한국노동운동사』(김윤환·김낙중, 일조각,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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