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중서(仲西), 호는 연농(硏農). 명유(命維)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가정이나 생애에 대하여는 밝혀진 바가 거의 없으며 유작으로 개인소장의 「산수도(山水圖)」가 한 점 알려져 있다.
중국 원말사가(元末四家)의 한 사람인 예찬(倪瓚)의 화법을 배운 것이라고 적은 이 「산수도」는 조선 후기에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이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림에는 안호사(安祜士)의 제발(題跋)이 붙어 있으며, 특히 영조 때 높은 안목으로 저명하였던 김광국(金光國)의 소장 화첩에 포함된 것이어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