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선지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대사헌 판전의시사, 동지밀직사사, 검교첨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원주(原州)
  • 사망 연도1330년(충혜왕 즉위년)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지면주사|판선공시사|대사헌판전의시사|동지밀직사사|검교첨의평리
  • 출생 연도1281년(충렬왕 7)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홍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후기에, 대사헌 판전의시사, 동지밀직사사, 검교첨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중찬(中贊) 원부(元傅)의 손자이며,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원경(元卿)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폐신(嬖臣: 간신)인 아버지의 추천으로 7세에 서면도감판관(西面都監判官)이 되고 좌우위호군(左右衛護軍)의 직에 올랐다.

이듬해 충선왕의 부름에 원에 갔으며 1311년(충선 복위 3) 12월 중현대부(中顯大夫) 밀직사 우부대언(右副代言) 사복정(司僕正) 지삼사사(知三司事)에 임명되고, 또 아버지의 직을 물려받아 소신교위 정동도진무(昭信校尉征東都鎭撫)가 되었다. 이 때 충선왕이 연경(燕京)에 머물러 있으면서 본국에 돌아갈 뜻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김심(金深)과 함께 왕을 모시고 귀국하려고 모의하다가 왕의 뜻을 거슬려 파직당하고 귀국하였다.

1314년(충숙 1) 지면주사(知沔州事)로 나갔다가, 1321년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가 되었다가 대사헌 판전의시사(大司憲判典儀寺事)로 옮겼다. 1320년(충숙 7) 환관 빠앤투그스[伯顔禿古思]의 모략으로 충선왕이 티베트(吐蕃, 西藏)로 유배되고, 충숙왕이 원나라에 머물자 고려인이 거의 조적(曺頔)의 당에 들었으나 홀로 의리를 버리지 않았으므로 모두 이를 칭찬하였다.

1324년 밀직부사가 되고, 이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이르러 파직되었다. 광정대부(匡靖大夫) 검교첨의평리(檢校僉議評理) 상호군(上護軍)으로 6년 동안 한거하다 1330년(충혜 즉위) 윤7월 세상을 떠났다. 거문고와 바둑에 능하였고, 약제(藥劑)에 조예가 깊어 많은 사람을 구제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