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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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조선시대에 성균관과 4부학당 등의 교육기관에서 유생의 출결사항을 점검하기 위해 학생들이 식당에 들어갈 때 도기(到記)에 점을 찍고 서명하게 하여 매기는 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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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에 성균관과 4부학당 등의 교육기관에서 유생의 출결사항을 점검하기 위해 학생들이 식당에 들어갈 때 도기(到記)에 점을 찍고 서명하게 하여 매기는 점수.
내용

하루에 아침저녁 두 번 식당에 들어가서 서명을 해야 원점 1점이 된다. 이 제도는 기숙하면서 공부하는 거재생(居齋生)들의 거관일수(居館日數)를 확인하기 위해 실시한 것으로, 특히 성균관의 경우 생원과 진사로 하여금 성균관에 기거하도록 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원점 300점을 취득한 자, 즉 성균관에 300일 거관(居館)한 유생이라야 과거시험인 관시(館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처음에는 향시에 응시하는 생원에게는 적용하지 않다가 생원들이 거관하지 않자 향시에도 적용하였다. 시험에 합격되었다 해도 원점이 모자라면 합격을 취소하고 사헌부에서 죄를 다스렸으며, 과거시험에서 동점자가 있을 경우에는 원점이 많은 자를 뽑았다.

그러나 식년(式年:과거를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해)이 지난 다음 친상(親喪)을 당하여 3년상을 마친 자 또는 70세 이상의 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에게는 원점에 관계없이 응시자격을 부여하였고, 별시의 경우에는 원점이 적용되지 않았다. 또한 관시의 응시자가 적으면 왕의 허가를 얻어 원점 50점 이상도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원점제도는 건국 초부터 마련되어 세종을 거쳐 성종에 이르는 시기에 보완되었다. 또한 세조 때는 의학을 장려하기 위해 의생(醫生) 원점법을 마련하여 의과시험에 적용하였다. 이처럼 유생들의 학문 진작을 위하여 원점을 실시하였으나, 그럼에도 거관하는 자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대리 서명하는 경우까지 발생하였다.

이에 1487년(성종 18)에는 원점법을 강화하여 관원이 친히 유생들을 점검한 뒤 도기에 적어서 봉인하고, 월말에 장관이 담당관과 함께 친히 원점을 계산하여 명부에 기록하되 당상과 낭청이 서압(署押:서명란을 둠)하여 후일의 증거로 삼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속대전(續大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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