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3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와 간행 여부를 알 수 없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에 서(序) 6편, 기(記) 9편, 제(題) 9편, 발(跋) 4편, 명(銘) 3편, 설(說) 2편, 논(論)·제문·애사 각 1편, 묘갈명 2편, 전(傳) 1편, 시 135수, 권2·3에 서(書) 226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기의 「포도연기(葡萄硯記)」는 1578년(선조 11) 곽월(郭越)이 동지사(冬至使)로 중국에 갔다가 신종(神宗)으로부터 수놓은 공예품인 운금(雲錦), 금으로 된 안장, 포도연이라는 벼루를 받아와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다.
임진왜란 중 곽월의 아들 재우(再祐)가 의병을 일으킬 때 그 비단으로 웃옷을 해입고 그 안장을 사용했기 때문에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는 칭호를 얻은 과정과, 뒤에 그 벼루가 곽씨문중에 다시 들어오게 된 내력을 밝히고 있다.
또한, 1637년(인조 15) 중국에서 반포한 대통력(大統曆)을 김상헌(金尙憲)이 소장하고 있다가 서손(庶孫) 수징(壽徵)에게 주었다. 수징은 권상하(權尙夏)에게 주었으며, 권상하는 이것을 충청북도 청주 화양동에 있는 만동묘(萬東廟)에 소장시켰다는 것이다.
제 중 「제병화팔칙(題屛畫八則)」에서는 화법(畫法)에 관한 여덟 가지 법칙을 소상하게 논술하고 있다. 「충개김공도해록후서(忠介金公蹈海錄後敍)」는 고려가 망하자 바다에 투신자살한 김제(金濟)에게 1798년(정조 22) 충개(忠介)라는 시호를 내리고 평해 앞바다에 초혼제(招魂祭)를 지낼 때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발 중 「우옹수서사잠첩발(尤翁手書四箴帖跋)」에서는 송시열(宋時烈)의 친필인 『사잠첩』에 대해 그 서법의 정묘함을 서술하고 있다. 설 중 「남지변설(南至辨說)」은 절후의 하나인 동지에 관한 논설이다.
추분부터 태양이 남쪽으로 돌아서 동지에는 남회귀선에 이른다는 설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남지설(南至說)의 세 원리 중 음(陰)이 다하면 양(陽)이 생기고 양이 다하면 음이 생긴다는 원리를 결론으로 논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