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중여(重如, 『면암선생문집(勉菴先生文集)』) 혹은 충주(忠柱, 『무과방목』). 아버지는 훈련원주부 유희량(柳熙良)이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고령첨절제사(高靈僉節制使)로 방어를 튼튼히 하고 있다가, 마침 북평사(北評事) 정문부(鄭文孚)가 의병을 일으키자 이와 합세하여 크게 이겼다.
그 공으로 경원부사로 승진되었으며, 우위장(右衛將)을 겸하기도 하였다. 이어서 벌어진 석령전투(石嶺戰鬪)에서도 커다란 전과를 거두었고, 나아가 장평(長坪)에서는 적을 무찔러 패주시켰다. 쌍개포전투(雙介浦戰鬪)에서는 작은 병력으로 적을 유인하여 대승을 거두었고, 백탑(白塔)에서는 대적을 협공하여 몰살시켰다.
전투할 때 항상 선봉에 서서 지휘하였으며, 패한 적이 없었다. 조정에서는 그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병조참판에 추증하였다. 경성의 창렬사(彰烈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