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화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예조정랑, 성균관직강, 김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백실(伯實)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554년(명종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정랑|성균관직강|김제군수
  • 출생 연도1504년(연산군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정랑, 성균관직강, 김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실(伯實). 유자해(柳子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종온(柳宗溫)이다. 아버지는 생원 유팽성(柳彭成)이며, 어머니는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고 시와 부(賦)를 잘 지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31년(중종 26)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교서관정자·저작·박사를 지냈다.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를 거쳐 공조·호조의 좌랑을 지냈다. 1538년 무주현감이 되어서는 관리를 엄히 다스리고 백성들을 은혜로 무마하였으며, 향교를 개축하는 등의 치적을 남겼다.

그 뒤 예조정랑이 되고 해운판관을 지낸 뒤, 1544년 성균관직강을 거쳐 김제군수가 되었으나 재해조사에 차질이 생겨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효성이 뛰어나 3년 동안 죽을 먹으면서 시묘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보고되어 장흥부사에 제수되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서 비단옷을 몸에 걸치지 않았고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검소를 가훈으로 삼아 자손들을 가르쳤다.

참고문헌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양곡집(陽谷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