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판도판서, 전라도병마사, 밀직부사상의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우왕이 즉위하여 판도판서(版圖判書)가 되었고, 1376년(우왕 2) 전주도병마사(全州道兵馬使)로 있을 때 왜구를 실은 20여 척의 배가 임주(林州)에 침입해오자 지익주사(知益州事) 김밀(金密)과 더불어 싸워 물리쳤다.
같은 해 왜구가 또 낭산(朗山: 지금의 礪山) 등지에 침입하자 원수 유영(柳濚)과 함께 싸워 30여 명을 죽이고 우마(牛馬) 300여 마리를 빼앗아 그 주인에게 돌려주니 우왕이 심히 기뻐하여 후한 상을 내렸다.
이듬해 해주와 평주에 왜구가 침입해오자 최영(崔瑩)·변안열(邊安烈) 등과 함께 이를 격파하였다. 그 뒤 왜의 기병 300여 기가 고부·태인 등지에 침입하여 관사를 불태우자 이를 추격하였으나 패퇴시키는 데 실패하여 전주를 함락당하고 말았다.
계속하여 적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패하였다. 그리하여 헌사(憲司: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아 봉익(奉翊) 이상의 벼슬은 삭탈되어 유배되었다가 곧 석방되어 밀직부사 상의(密直副使商議)를 지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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