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팔주(三八紬)는 중국에서 생산하여 조선에 수입된 평 견직물(平絹織物)의 한 종류이다. 삼팔주는 중국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삼팔’은 길이가 중국자[中國尺]로 38 자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삼팔주라는 명칭을 19세기의 문헌인 『만기요람(萬機要覽)』, 『한양가(漢陽歌)』, 『탁지준절(度支準折)』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반면 20세기 문헌인 『순종실록(純宗實錄)』, 『ᄇᆞᆯ긔』, 『조선휘보(朝鮮彙報)』에서는 삼팔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말, 20세기 초 무렵에 국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명칭으로 본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朝鮮)』 1925년 11월호에 따르면 당시 삼팔주는 각 계층에서 사용된 직물로 그 수요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직물의 명칭과 용도가 기록되어 있는 『ᄇᆞᆯ긔』를 분석해 보면, 삼팔주는 주로 속옷, 하의, 상의, 포(袍) 등의 옷감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에서는 원래 대부분의 삼팔주를 중국에서 수입하였다. 그러나 중국산 견직물을 제재하기 위하여 1924년 7월에 사치품 관세를 실시하여 조선으로 수입되는 중국의 견직물에 관세를 부가한 이후에는 중국산 삼팔주 대신 주로 일본의 이시카와[石川, いしかわ] 또는 후쿠이[福井, ふくい]에서 만든 대용품을 사용하였다. 그후 1925년 무렵, 조선에서도 삼팔주를 생산하게 되었다.
삼팔주는 대개 경 · 위사 모두 생사(生絲)를 사용하여 촘촘하고 탄탄하게 평직(平織)으로 천을 짠 후에 정련(精練)한 것이다. 정련을 하지 않은 것은 생 삼팔주(生三八紬)라고 하였다. 『조선』 1925년 11월호에 따르면 당시의 삼팔주는 길이가 11야드(yd) 내외, 폭이 16인치(inch), 무게 50돈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삼팔주로는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병기(金炳冀, 1818~1875)의 홍삼(紅衫)과 폐슬(蔽膝),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 박물관에 소장된 치마의 겉감 등이 있다. 이 직물은 모두 재단 · 봉제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길이를 확인하여 삼팔주인지 여부를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직물의 공통점은 경사(經絲)가 위사(緯絲)에 비하여 가늘고, 경사와 위사 모두 품질이 좋은 필라멘트사(filament絲)를 사용하였으며, 경위사(經緯絲)가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여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좋다는 것이다. 또 경사 두 올이 한 조를 이루어 몰려 있으며 두 올과 두 올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