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개념
길이를 측정하는 단위이며 도구. 척.
이칭
이칭
정의
길이를 측정하는 단위이며 도구. 척.
개설

척(尺)이라고도 한다. 자를 언제부터 만들어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기원은 인체기원설과 황종율관설 등이 있다. 인체기원설은 중국의 경우 손가락을 펴서 엄지와 장지의 길이에 근거하였다는 것이고, 황종율관설은 12음율인 황종에 기준하여 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는 처음 인체에 기원하였다가, 이를 점차 제도화를 위해 황종율관에 근거하여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롯한 여러 자료에 ‘寸·尺·丈尋·匹·里’ 등의 다양한 용례가 기록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 체계화를 갖추고 사용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자의 길이는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당대척(29.8cm)과 출토된 척(23.7cm)을 1척 5촌으로 환산하면 이를 고구려척(35.6cm)이라고 이해하는 입장,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척(29.0cm) 등이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시기 및 국가에 따라서 한척(약 23cm), 고구려척(약 35.6cm) 및 당대척(약 29.7cm) 등이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척의 길이는 통일신라시대의 당대척을 계승되었다. 그것은 고려시대 현존 건축물인 부석사의 조사당, 봉정사의 극락전, 수덕사의 대웅전, 강릉의 객사문 등의 실측에 의하면 기준척이 모두 약 31cm이고, 북한지역에 있는 고려유물인 개성 만월대, 장안사 대웅보전, 개성 현화寺 7층 석탑 등에도 31cm의 기준척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척의 길이는 통일신라시대 당대척보다 약간 늘어난 약 31cm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자의 종류와 길이는 『經國大典』에 황종척을 기준하여, 周尺을 黃鍾尺에 비교하면 주척 1척은 황종척의 6촌 6리이고, 營造尺을 황종척에 비교하면 영조척 1척은 황종척의 8촌 9리이고, 造禮器尺을 황종척에 비교하면 조례기척 1척은 황조척의 8촌 2분 3리이고, 布帛尺을 황종척에 비교하면 포백척 1척은 황종척의 1척3촌4분8리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조선전기의 자는 黃鍾尺(약 34.48cm)·周尺(약 20.62cm)·營造尺(약 30.8cm)·造禮器尺(약 28.63cm)·布帛尺(약 46.66cm) 등이 중심이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의 자는 황종관을 만들 때 사용하였던 종서척과 횡서척이 있었고, 『열양세시기』에 의하면 정조가 정조 20년(1796) 공경과 신하에게 中和節에 나누어준 중화척(49.7cm)도 있었고, 수의를 만들 때 사용하던 장척(82.3cm), 기녀용 응급침(8cm)척, 붓통자(33cm) 등의 경우처럼 다양하였다. 하지만 민간에서 널리 사용된 자는 周尺·營造尺·布帛尺 등이었다.

광무 6년 도량형규칙의 반포 때 일본의 곡척을 도입하였는데, 곡척의 1尺은 0.30303m로, 1미터[米突]는 3.3尺으로 하였다. 이 때 자의 단위에서도 간·연 등이 사용되었고, 자의 종류도 용도에 다른 분류가 아니고, 형태에 따라 직선자(直尺), 직각자(曲尺), 쇠사슬자(鏈尺), 줄자(卷尺), 접음자(疊尺) 등으로 분류되었다.

연원 및 변천

자는 최근 삼국시대의 유적지에서 여러 척이 출토되고 있는 점과 신라의 경우 중고기에 남산신성비를 쌓을 때 축성의 거리를 척과 촌으로 분명하게 기록하였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일찍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유추되지만, 그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아마도 삼국 초기의 자는 한척 혹은 고구려척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삼국통일기 이후의 자는 점차 당대척을 중심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고려시대의 자는 자연스럽게 당대척을 계승하여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의 자는 용도에 따라 黃鍾尺·周尺·營造尺·造禮器尺·布帛尺 등이 사용되었고, 이외에도 종서척과 횡서척·중화척·장척 등이 존재한 것처럼 매우 다양하였다. 한말 도량형제의 개혁이후의 자는 곡척을 기준하여 형태에 따라 직선자(直尺), 직각자(曲尺), 쇠사슬자(鏈尺), 줄자(卷尺), 접음자(疊尺) 등이 사용되었다.

내용

자는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경우 한척·당대척·고구려척 등의 경우처럼 국가명을 붙여 사용한데 반하여 조선시대의 경우 건물의 축조를 위해서는 영조척, 포의 수취를 위해서는 포백척 등의 경우처럼 용도에 따라 명칭을 다르게 하여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자는 형태에 따라 붙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자의 명칭은 국가명에서 용도별로 바뀌었다가 다시 형태별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자는 최근 고고학의 발굴 성과를 통해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되었던 한척, 당대척, 고구려척 등이 발견되었고, 각 박물관에도 조선시대의 黃鍾尺·周尺·營造尺·造禮器尺·布帛尺 등이 보존되어 있다. 특히 궁중유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사각 유척은 조선시대 자의 복원을 위한 좋은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자는 도량형의 근간으로, 길이의 측정을 위해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자를 용도에 따라 달리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것은 자의 기능을 세분화시켰음을 엿볼 수 있고, 자를 국가적으로 중요하게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 도량형』, 1997
박흥수,『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88
남문현, 『한국의 물시계』, 1995
이종봉,『한국중세도량형제연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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