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생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참찬의정부사, 호조판서, 중군도총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양정(良靖)
인물/전통 인물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1434년(세종 1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공조판서|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호조판서|중군도총제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참찬의정부사, 호조판서, 중군도총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문하찬성사 유연(柳淵)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공민왕 때 궁중에서 자랐으며, 20세에 벼슬길에 올라 창왕 때에 문하부밀직사(門下府密直使)가 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는 판자혜부사(判慈惠府使)로, 이듬해에는 동북면도절제사가 되었다.

1392년 동북면도절제사 겸 화령부윤(和寧府尹) 역임 시 왜구를 잡는 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에 중군총제가 되었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4년 경상도도절제사 및 경상도병마절제사로 있을 때도 왜구 퇴치에 큰 공을 세웠다.

1407년 공조판서·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가 되었으며, 이듬해 성절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9년 호조판서·중군도총제 등을 역임하고, 형조판서가 되었다. 당시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 형제의 사건관련자를 국문할 때 형관으로서 엄하게 하지 않았다는 문책을 당하여 파직되어 외방(外方)으로 귀양갔다.

이듬해 과전(科田)은 환급받게 되었다. 성품이 너그러우면서 강직하였으며, 문관으로 무관도 겸하면서 특히 왜구 퇴치에 큰 공을 세웠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