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참찬의정부사, 호조판서, 중군도총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2년 동북면도절제사 겸 화령부윤(和寧府尹) 역임 시 왜구를 잡는 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에 중군총제가 되었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4년 경상도도절제사 및 경상도병마절제사로 있을 때도 왜구 퇴치에 큰 공을 세웠다.
1407년 공조판서·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가 되었으며, 이듬해 성절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9년 호조판서·중군도총제 등을 역임하고, 형조판서가 되었다. 당시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 형제의 사건관련자를 국문할 때 형관으로서 엄하게 하지 않았다는 문책을 당하여 파직되어 외방(外方)으로 귀양갔다.
이듬해 과전(科田)은 환급받게 되었다. 성품이 너그러우면서 강직하였으며, 문관으로 무관도 겸하면서 특히 왜구 퇴치에 큰 공을 세웠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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