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신민부에 가입하였고, 한족총연합회, 한족자치연합회 등을 조직해 김좌진을 보좌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28년 12월 신민부와 참의부(參議府)가 중심이 되어 민족유일당을 추진하려던 혁신의회(革新議會)가 1929년 5월 해체되자[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참의부(參議府)의 통합운동과정에서 3부는 혁신의회와 국민부(國民府)로 재편되고 혁신의회는 1년간만 존속시키기로 하였다. 김좌진과 같이 북만주로 돌아가 1929년 7월 신민부의 후신격으로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를 조직하여 본부를 영안현 산시역(寧安縣山市驛)에 두고 이 회의 주석인 김좌진을 측근에서 적극적으로 보좌하며 항일운동에 진력하였다.
1930년 1월 26일 김좌진이 공산주의자인 박상실(朴相實)의 저격을 받고 순국하자, 동요하는 단원들을 재결속시켜 한족자치연합회(韓族自治聯合會)로 재편하였다. 그해 10월 스토우[石頭河子]에서 하얼빈주재 일본총영사관소속 경찰의 습격을 받고 체포되어 4년 6월의 징역형을 받고 길림에서 복역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의 발발로 어수선해진 틈을 이용, 탈옥하다가 일본경찰에 피살되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독립유공자공적조서』(보훈처, 1984)
- 『독립운동사자료집』1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 『한국독립운동사』5(국사편찬위원회, 196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