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현(士鉉), 호는 학서(鶴棲). 서울 출생.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사춘(柳師春)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예조판서 이지억(李之億)의 딸이다.
1794년(정조 1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정원가주서가 되고 주자서(朱子書) 3책을 하사받았다. 1796년 경연에서 주자서와 『국조보감(國朝寶鑑)』을 진강하였고, 1800년에 사간원정언이 되었다가 곧 부여현령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홍문관부교리를 거쳐 북평사가 되어서는 학교를 세워 교육에 힘썼다. 이듬 해에 성균관사성을 지내고, 1807년(순조 7)에 안변부사가 되었을 때 화재로 소실한 무기고와 병기를 복구하였다. 1810년 군자감정과 홍문관교리를 지내고, 1820년 예조참의, 1822년 동부승지, 1829년 부총관 · 우승지 ·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향리에 돌아가 후진을 가르치면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성리학에 있어서는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견해를 따랐으며,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저서로 『학서문집(鶴棲文集)』 20권 10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