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판윤, 좌참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65년 전적·감찰·예조좌랑을 역임했으며, 1669년 직강으로서 황해도도사를 겸했다가 직무 수행의 잘못으로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이듬해 사서에 제수된 뒤 세자시강원문학·지평(持平)을 지냈고, 1671년 정언(正言)이 되어 재상의 권한 비대로 야기된 시폐(時弊)를 논했으며, 장령·제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675년(숙종 1) 황해도관찰사로 있을 때, 중국 사신에게 선왕 효종이 신하의 견제를 받았다는 거짓말을 한 원접사(遠接使) 오시수(吳始壽)를 극론하다가 의금부에 하옥된 뒤 영광에 유배되었다. 1680년 동부승지에 서용되었으며, 함경감사를 거쳐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간·강화유수를 차례로 지냈다.
1686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으나, 강화유수 때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었다는 탄핵을 받아 부임하지 못하였다. 이듬해 한성판윤이 되고 좌참찬·공조판서를 거쳐 비변사(備邊司)의 천거로 광주유수(廣州留守)가 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자, 송시열(宋時烈) 당(黨)으로 몰려 강진에 귀양갔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
나라 일에 직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1694년 신원(伸寃)되었다. 저서로는 『하곡집』이 있다. 시호는 익정(翼正)이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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