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중기의 명신(名臣) 윤관(尹瓘, ?∼1111년)의 영정.
내용
파평윤씨 문중에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윤관의 본래 영정은 함경북도 북청군 소재의 만뢰사(萬賴祠)에 봉안되어 오던 것을 1902년에 모사하여 이 곳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 이 영정은 전신상(全身像)으로 윤관이라는 인물의 신격화, 상징화된 위용(威容)을 그려 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갑주무복본(甲胄戊服本)은 불화에서의 천왕상(天王像)에 가까운 상용(像容)으로 그려져 속신적(俗神的) 종앙(宗仰)의 대상으로서의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윤관 영정은 초상화사의 자료로서보다는 오히려 민속 자료(民俗資料)로서의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영정의 모습이 무속적인 인상이 짙다는 여론이 있어 1980년에 학계의 고증을 받아 새로이 문관상(文官像)을 제작하여 앞의 문 · 무상과 함께 나란히 봉안하였다. 윤관의 자는 동현(同玄), 시호(諡號)는 문숙(文肅),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고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1104년(숙종 9)에 동북면행영 병마도통(東北面行營 兵馬都統)에 임명되어 여진(女眞)을 정벌하다가 실패하였다. 그러나 1107년(예종 2)에 여진 정벌 원수(元帥)가 되어 동북계(東北界)에 있는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아 진국공신(鎭國功臣)이 되었다.
참고문헌
- 『충청북도지』(충청북도, 1995)
- 『인물지』(충청북도, 1987)
- 『문화재지』(충청북도, 1982)
-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