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군수(君叟), 호는 당림(棠林). 아버지는 판관 윤익경(尹益慶)이며, 어머니는 장흥임씨(長興任氏)로 임제남(任悌男)의 딸이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큰아버지 양근군수(楊根郡守) 윤이경(尹履慶)과 함께 왜병과 싸우다 큰아버지가 전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보니 아버지도 의병장으로서 왜병과 싸우다 순절하고 없었다. 그 뒤로 과업(科業)을 전폐하고 무예를 닦는 데 전념하였다.
그 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규합하고 군량미를 조달하여 북상하던 도중에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통곡하며 북쪽을 향하여 숙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한 일념으로 문자질(門子姪)의 교육에 힘썼다. 이 사실을 어사 민정중(閔鼎重)이 장계로 올렸으나, 등용되기 전에 죽었다. 뒤에 도사로 증직되었고, 도유(道儒)들의 주선과 성균관의 통문으로 강진의 화암사(花巖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당림유고(棠林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