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비경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병조참의, 공조참의,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충거(沖擧)
  • 이칭파원군(坡原君)
인물/전통 인물
  • 본관파평(坡平, 지금의 경기도 파주)
  • 사망 연도1680년(숙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참의|공조참의|경주부윤|회양부사
  • 출생 연도1607년(선조 4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양수 (청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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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참의, 공조참의,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충거(沖擧). 고조는 첨정 윤응규(尹應奎)이며, 형조참판 윤인함(尹仁涵)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전적 윤홍립(尹弘立)이고, 아버지는 윤유건(尹惟健)이며, 어머니는 직장(直長) 권급(權彶)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후에 참판 이민구(李敏求)의 문인이 되었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재임(齋任)이 되었다.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와 전적을 거쳐 정언이 되었다.

이후 벼슬이 대개 양사 사이에 거의 머물렀는데, 각 아문의 둔전과 여러 궁가(宮家)의 절수(折受)를 파할 것을 요청하였다.

1660년(현종 1) 장령으로 있을 때, 효종 사후 대왕대비의 복제문제를 놓고 송시열(宋時烈) 등 서인의 1년설과 윤선도(尹善道) 등 남인의 3년설이 대립하자, 윤선도의 상소를 예론에 거짓으로 의탁한 흉계라고 극론하며 국문할 것을 청하였다.

그 뒤 효종대왕 부묘(柎廟) 때에 독축관(讀祝官)이 된 예에 따라서 당상관에 오르고 우부승지가 되었으나, 그 직을 사양하고 지방관으로 나갔다. 통진현감으로 있으면서는 양전(量田)을 하는 데나 부역을 부과하는 데도 백성들의 편한 것을 따라 실정대로 하였다.

1667년 우승지가 되고 병조참의·공조참의가 되었다. 이어서 경주부윤·회양부사에 제수되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추방되고 숙종이 회맹(會盟)할 적에 윤비경이 파평군(坡平君) 윤곤(尹坤)의 적장손이라 하여, 부사과(副司果)·호조참판(戶曹參判)에 제수되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봉군호는 파원군(坡原君)이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송자대전(宋子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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