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여진(汝進). 호는 과재(果齋). 목사 윤시영(尹時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영의정 윤징(尹澄)이다. 아버지는 지사(知事) 윤우신(尹又新)이며,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로 유문윤(柳文潤)의 딸이다.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검열·주서·정자·교리·정언·지평을 지냈다. 1587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가서 이성계(李成桂)의 조상이 이인임(李仁任)으로 오기된 명나라의 기록을 정정한 공으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봉하여졌다.
교리로 있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종사관이 되어 싸우다가 상주성(尙州城)에서 전사하였다. 유고로 시 22수와 대책(對策) 1편이 『삼절유고(三節遺稿)』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