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임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수찬, 장령, 보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선원(善元)
  • 성초(性初)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해평(海平,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수찬|필선|수찬|장령|보덕
  • 출생 연도1571년(선조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홍갑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수찬, 장령, 보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성초(性初). 초명(初名)은 윤선원(尹善元). 윤기장(尹起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진(尹震)이다. 아버지는 윤의형(尹義衡)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강희경(姜熙卿)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615년(광해군 7)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다가 몇개월 후 봉교로 승진하였다. 사관(史官) 추천일로 이조정랑 박홍도와 언쟁을 벌였으나 전례에 따른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듬해 정언 재직 시 부수찬 유효립(柳孝立)의 탄핵으로 사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듬해 분병조(分兵曹)좌랑으로 제수되었다가 이후 문학·수찬을 역임하였다. 수찬으로 재직하던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를 서궁에서 폐출하는 일에 가담하였다가 다시 예조정랑, 문학을 역임하였고, 이듬해 부수찬을 거쳐 교리·수찬으로 승진하였다.

1620년(광해군 12)에는 진휼청에서 구휼을 위해 영남지역에 종사관으로 파견되었으며, 그 뒤 정언에 제수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려 체차되었다. 이어 부수찬·필선·수찬·장령·보덕·부수찬을 역임하던 중 인조반정으로 삭탈, 관작되었으며, 그 뒤 1633년(인조 11) 대사령(大赦令: 왕의 명령으로 많은 죄인을 사면함.)으로 복권되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

  • - 『대동야승(大東野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