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 장군 묘 ( )

고려시대사
유적
문화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이자 장군인 윤관의 무덤.
이칭
이칭
파주 윤관장군묘
약칭
윤관묘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무덤
건립 시기
고려 전기
관련 국가
고려
관련 인물
윤관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88년 02월 27일 지정)
소재지
경기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930 (분수리)
내용 요약

윤관장군묘(尹瓘將軍墓)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이자 장군인 윤관의 무덤이다. 오랫동안 소재가 확인되지 않다가 1764년(영조 40)에 현 묘소 부근에서 묘비 조각이 발견되면서 윤관의 무덤으로 공인되었다. 청송심씨 가문과 묘지 소유에 대한 오랜 다툼이 있었다. 윤관장군묘는 본래 임진강 이북 임강현에 있었으나 후대에 경기도 파주로 이장 또는 새로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이자 장군인 윤관의 무덤.
연원/역사적 관련 사항

윤관(尹瓘, ?~1111)의 묘는 오랫동안 소재가 확인되지 않다가 1764년(영조 40)에 현 묘소 부근에서 묘비 조각이 발견되면서 윤관의 무덤으로 공인되었다. 수백 년간 윤관장군묘의 위치가 밝혀지지 않았던 탓에 조선 후기 현재의 묘역 일대에 청송심씨 묘가 들어서게 되고, 1662년(현종 3)에 지금의 윤관장군묘 바로 뒤에 인조 때 영의정 심지원(沈之源, 1593~1662)의 묘가 조성되었다.

100여 년 뒤 파평윤씨 일가가 이곳을 윤관장군의 묘로 주장하게 되면서 두 가문 간 산송(山訟)이 시작되었다. 영조가 윤관과 심지원의 묘를 모두 그대로 받들도록 중재하였으나 해결되지 않았고 현대까지 다툼이 이어졌다. 묘지를 둘러싼 오랜 갈등은 2005년 파평윤씨 문중에서 심지원묘를 비롯한 청송심씨 묘 19기를 이장할 부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2008년 이장이 완료되면서 해결되었다.

윤관장군묘는 처음부터 파주에 조성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아들 윤언이(尹彦頤, 1090~1149)의 묘지명에 의하면 임강현(臨江縣)에 있었다. 묘비 조각과 윤언이 묘지명의 내용을 바탕으로 윤관장군묘는 윤언이가 사망한 시기까지는 임진강 북쪽 임강현에 있었으나 윤관묘의 소재지를 파주로 기록한 주1』이 편찬된 1481년 이전에 지금의 묘역으로 이장되었거나 새로 묘가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형태와 특징

윤관장군묘는 파주 박달산(363m) 북서쪽 능선에서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내린 지맥의 말단에 있다. 왕릉의 사초지(莎草地)와 같이 조성된 경사진 언덕의 정상에 봉분이 자리한다. 묘역은 2단의 주2이 설치되어 3단으로 구분되며, 이 중 가장 상단에 봉분이 있다. 원형 봉분의 하단에는 다듬은 주3으로 주4을 둘렀고 주위에는 ‘八’ 자 모양의 주5이 둘러져 있다.

봉분 정면 왼쪽에는 1766년(영조 42)에 건립된 묘비가 세워져 있다. 2단 묘역에는 주6주7, 주8 2기가 있으며, 3단에는 가운데에 4각 장명등이, 양옆으로 주9, 주10 각 3기와 주11주12 · 주13 각 2기가 설치되어 있다.

윤관 묘역의 주14은 묘비와 주15에 수직 홀(笏)을 들고 있는 고려시대 양식의 주16을 제외하고 대부분 후대에 조성된 것이다. 묘역 아래에는 영정을 모신 여충사(麗忠祠)와 1861년(철종12) 건립한 교자총비(橋子塚碑), 1966년 세운 신도비 등이 있다.

현황

윤관장군묘는 경기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930(분수리 산 4-1)에 있다. 1973년 7월 10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2월 27일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묘역의 면적은 21,550㎡이며 파평윤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1990년대 묘역 정화 사업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2011년 7월 28일 ‘윤관장군묘’에서 ‘파주 윤관장군묘’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의의 및 평가

파주 윤관장군묘는 조성 시기가 분명치 않고, 후대에 정비가 이루어져 본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었으나, 여진 정벌의 주역으로 고려시대 북방 영토를 수호하고 개척했던 윤관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조선왕조실록[英祖實錄]』

단행본

『군사보호구역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경기도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00)

논문

박종기, 「고려 윤관의 묘비명과 묘소」(『한국학논총』 42,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4)

인터넷 자료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https://portal.nrich.go.kr/)
주석
주1

조선 성종의 명(命)에 따라 노사신 등이 편찬한 우리나라의 지리서. ≪대명일통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 각 도(道)의 지리ㆍ풍속과 그 밖의 사항을 기록하였다. 특히 누정(樓亭), 불우(佛宇), 고적(古跡), 제영(題詠) 따위의 조(條)에는 역대 명가(名家)의 시와 기문도 풍부하게 실려 있다. 55권 25책의 활자본.    우리말샘

주2

무덤 앞에 편평하게 만들어 놓은 장대석.    우리말샘

주3

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어 만든 돌.    우리말샘

주4

능이나 묘의 둘레에 돌려 쌓은 돌.    우리말샘

주5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주6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    우리말샘

주7

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 탁상 모양을 새긴다.    우리말샘

주8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주9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주10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주11

사내아이의 형상을 새겨서 무덤 앞에 세우는 돌.    우리말샘

주12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주13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주14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5

조선 시대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홍패를 받을 때 쓰던 관(冠). 사모같이 두 단(段)으로 되어 있으며, 위가 모지고 뒤쪽의 좌우에 날개가 달려 있다.    우리말샘

주16

돌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조형물.    우리말샘

집필자
이희인(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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