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기(高兆基, ?1157)는 고려 예종 의종 대 문신이다. 예종 초, 문과에 급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149년(의종 3)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고조기는 관직뿐만 아니라 당대의 시풍을 진작하고 학문으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난 뒤 1157년(의종 11) 사망하였고, 의종이 시호를 내렸다. 제주 출신으로 처음으로 재상에 오른 고조기의 무덤은 도내에서 피장자가 알려진 분묘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이다. 문경공고조기묘는 조선 후기에 존재가 확인되어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경공고조기묘는 제주시 아라동의 얕은 구릉에 있다. 봉분은 평면 장방형으로 정면 양쪽 모서리에 현무암을 2단으로 쌓아 올리고, 가운데에는 원형의 문양이 새겨진 반원형 판석을 두었다. 봉분 둘레에는 직사각형의 현무암 돌기둥 17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봉분 앞에 상석과 향로석, 묘비 2기가 있고, 좌우로 문인석과 무인석, 동자석, 석수, 망주석, 장명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역 내 설치된 비와 석물은 대부분 근래에 세운 것이다. 문경공고조기묘는 고려시대 성행한 방형분(方形墳)의 형태이지만, 널돌이나 깬돌 등으로 봉분 하단을 두르는 일반적인 방형분과 구조가 다르다. 묘 주위에 제주 분묘의 특징인 사성(莎城)이 아닌 돌기둥을 세운 점이 특징이다.
문경공고조기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2464번지에 자리한다. 고려시대 분묘로 연대가 분명하고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1977년 7월 13일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묘역은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9월 제향을 지내고 있다. 1968년 묘비와 석물을 세웠고, 2000년대 묘역 주변에 탐라국 종묘 건립과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독특한 구조의 고려시대 방형분의 모습을 보여 주는 문경공고조기묘는 제주도에서 피장자가 알려진 분묘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고조기의 생애와 고려시대 제주의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