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김취려의 무덤.
연원/역사적 관련사항
김취려의 묘지명에는 1234년 7월 강화 진강현(鎭江縣) 대곡동(大谷洞) 서쪽 기슭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공의 묘지명은 일제강점기 강화 양도면 하일리에 있는 무덤에서 도굴되어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해당 무덤의 위치가 묘지명의 기록과 일치한다. 울산 언양의 위열공 묘소는 조성 경위나 시기에 대해 알려져 있지 않은데, 현재 언양김씨 종중에서 언양과 강화 묘소를 모두 김취려묘로 인정하고 있다.
형태와 특징
묘역 양쪽에 고려시대 양식의 석인상이 2기씩 배치되어 있다. 직사각 기둥으로 된 몸체에 큰 두상이 연결된 장승형으로 정면에 홀(笏)을 들고 있다. 이 중 2기는 목이 부러져 있다. 2018년 묘역 정비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근래에 조성하였던 봉분 병풍석과 문인석, 무인석을 제거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묘역 아래에는 1989년에 건립된 재실 송릉재(松陵齋)와 1867년(철종 8)에 세운 김취려장군태지유허비(金就礪將軍胎地遺墟碑)가 있다.
현황
1987년 5월 19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행정구역 변경으로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강화의 김취려묘는 언양김씨 종친회에서 새롭게 정비하였고, 2010년 12월 6일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울산과 강화 묘소 모두 언양김씨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속수증보강도지(續修增補江都誌)』
단행본
- 『강화 고려고분 지표조사보고서』(인천시립박물관, 2003)
- 『강화의 문화유적』(강화군 · 조계종문화재발굴조사단, 2002)
- 김용선, 『역주 고려묘지명집성』(한림대학교출판부, 2001)
논문
- 윤용혁, 「13세기 대거란전과 김취려-김취려에 대한 인물사적 평가」(『한국인물사연구』, 2011)
인터넷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국가유산 지식이음(https://portal.nrich.go.kr/)
- 디지털울산문화대전(http://ulsan.grandculture.net/)
- 언양김씨대종회(http://unyangkim.or.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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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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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돌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조형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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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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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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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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