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조선 후기 군사 진보.
건립 경위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최대 격전지였다. 1871년(고종 8) 6월 1일(양력) 초지진을 거쳐 강화해협(염하)을 따라 북상하던 미국 함대가 손돌목 근처에 도달하자 광성보에서 사격을 하였고 남쪽의 덕진진과 대안(對岸)에 위치한 덕포진에서 이에 호응하면서 함대의 북상을 막았다. 북상에 실패한 미군은 6월 10일 초지진에 상륙하여 이튿날 점령하고 이어 덕진진을 함락한 뒤 광성보로 향하였다. 미군 상륙 부대의 마지막 공격 목표였던 광성보에는 진무중군 어재연(魚在淵)이 지휘하는 350여 명의 조선군이 방어하고 있었다. 군함의 함포 지원 사격을 받으며 공격한 미군은 조선군을 전멸시키고 광성보를 점령하였다. 당시 돈대의 성첩과 문루가 파괴되었으며 ‘수(帥)자기’를 비롯한 깃발과 화포 등이 미군에게 노획되었다.
변천
광성보는 1971년 12월 29일 사적 제227호로 지정되었으며 1970년대 강화 전적지 보수 정화 사업을 시행하면서 돈대와 문루를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2011년 광성보에서 강화 광성보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매년 음력 4월 24일에는 신미양요 당시 순국한 어재연 장군과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한 ‘광성제’가 거행되고 있다.
형태와 특징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경내 전체가 광성보의 영역으로 인식되지만 보(堡)는 개별 성곽이나 방어 시설이 아니라, 군사 지휘부이다. 광성보의 본진이 따로 존재하였고 옛 지도를 통해 광성돈대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지금까지 구체적인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당시 전사한 어재연 · 어재순 형제와 조선군을 기리기 위해 1873년 건립한 2기의 순절비인 쌍충비(雙忠碑)와 무명 순국자들의 시신을 7기의 무덤에 나누어 합장한 것으로 전하는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순절묘단)이 조성되어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강도지(江都志)』
-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화부지(江華府志)』
단행본
- 『강화도의 국방유적』(육군박물관, 2000)
-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성곽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 『신편 강화사 증보』(강화군 군사편찬위원회, 2015)
- 『19세기 서구열강의 침입과 강화해양관방체제』(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 2019)
- 신효승, 『신미양요』(글누림, 2021)
논문
- 배성수, 「관방의 보루, 보장처 인천」 (『미추홀 2000년 인천정명 600년』, 인천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13)
인터넷 자료
-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https://portal.nrich.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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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진영. 조선 현종 7년(1666)에 강화에 포함되었다. 이곳은 서울로 통하는 바닷길의 중요한 요충지로, 돈대와 포대 및 파수청이 설치되어 있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이곳에서 각각 프랑스 함대와 미국 함대에 맞서 싸웠다. 사적 정식 명칭은 ‘김포 덕포진’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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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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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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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시대에,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구축한 요새. 신미양요ㆍ병인양요 때의 격전지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있다. 사적 정식 명칭은 ‘강화 초지진’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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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싸워서 물품이 획득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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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대포를 올려놓는 장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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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적의 침입이나 피해를 막기 위하여 미리 지키고 대비함. 또는 그런 설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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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강, 호수, 바다 따위의 건너편에 있는 언덕이나 기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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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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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구한말에, 서양 세력이 천주교 탄압이나 통상 문제 따위를 빌미로 일으킨 난리. 조선 고종 3년(1866)에 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하자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하여 일으킨 병인양요와 고종 8년(1871)에 미국 군함이 통상을 강요하기 위하여 강화도를 침범하여 일으킨 신미양요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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