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개항기 중추원1등의관, 궁내부특진관, 홍문학사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 시호문정(文貞)
  • 치도(稚道)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해평(海平)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26년(순조 2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영민 (상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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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중추원1등의관, 궁내부특진관, 홍문학사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치도(稚道). 윤응규(尹應奎)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60년(철종 11) 정시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주천(注薦)되어 정언·지평을 거쳐 홍문관부교리·철종실록낭청(哲宗實錄郎廳)·이조참의·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880년(고종 17) 4월 그해 2월에 파방된 증광감시가 다시 실시되자 제2소 시관(試官)이 되었다. 1882년 대원군의 명으로 임오군란의 수습을 위하여 제물포에 온 일본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 일행의 반접사가 되어 그 일행을 회유하여 서울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하나부사는 1개 중대를 이끌고 서울로 들어왔다.

하나부사가 대원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칭병으로 사임, 그 요청을 회피하였다. 1885년 양주목사로 재임할 때 도결 혁파를 내세운 여주민란의 안핵사로 차하(差下)되었으나, 조사가 철저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러나 4개월 뒤 다시 사헌부대사헌이 되었다. 대원군이 청나라에서 환국하자 민씨정권이 임오군란의 죄인들을 처형하는 등 대원군을 억압하는 분위기 속에서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가 되었다.

또 1885년에도 대사헌이 되어 갑신정변의 여당으로 신기선(申箕善)·윤웅렬(尹雄烈) 등을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아관파천 후 수구파 김병시(金炳始)가 의정(議政)이 되어 복고적 정책을 시행할 때 중추원1등의관에 취임하였다. 그뒤 광무연간에도 궁내부특진관·홍문관학사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東邦關係』(渡邊修二郎,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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