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중추원1등의관, 궁내부특진관, 홍문학사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80년(고종 17) 4월 그해 2월에 파방된 증광감시가 다시 실시되자 제2소 시관(試官)이 되었다. 1882년 대원군의 명으로 임오군란의 수습을 위하여 제물포에 온 일본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 일행의 반접사가 되어 그 일행을 회유하여 서울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하나부사는 1개 중대를 이끌고 서울로 들어왔다.
하나부사가 대원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칭병으로 사임, 그 요청을 회피하였다. 1885년 양주목사로 재임할 때 도결 혁파를 내세운 여주민란의 안핵사로 차하(差下)되었으나, 조사가 철저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러나 4개월 뒤 다시 사헌부대사헌이 되었다. 대원군이 청나라에서 환국하자 민씨정권이 임오군란의 죄인들을 처형하는 등 대원군을 억압하는 분위기 속에서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가 되었다.
또 1885년에도 대사헌이 되어 갑신정변의 여당으로 신기선(申箕善)·윤웅렬(尹雄烈) 등을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아관파천 후 수구파 김병시(金炳始)가 의정(議政)이 되어 복고적 정책을 시행할 때 중추원1등의관에 취임하였다. 그뒤 광무연간에도 궁내부특진관·홍문관학사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東邦關係』(渡邊修二郎,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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